1930년 8월4일 미국 뉴욕 자메이카 거리. 상점가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 ‘킹 컬렌(King Kullen)’이라는 새 잡화점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점주 마이클 컬렌(Michael J Cullen· 당시 46세)을 무모하다고 비웃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수요가 격감하던 시기, 시내 외곽의 한적한 곳에 새 가게를 냈으니까. 규모도 컸다. 매장 넓이가 560㎡. 빈 창고를 개조한 컬렌의 잡화점은 예상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컬렌은 돈을 쓸어담았다. 컬렌은 6년 뒤 한창나이에 죽었지만 비슷한 규모의 매장은 17개로 불어났다.
세계적인 불황과 실직 사태 속에서 컬렌이 성공을 거둔 비결은 변혁. 잡화점은 이전까지 비용이 많이 들고 매출이 들쑥날쑥하며 고객의 불만이 많은 업종으로 꼽혔다. 가게에 들어선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주인이 선반을 뒤져 가져다주고 계산하는 방식으로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기다리기 일쑤였다. 점주들은 고객에게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점원을 늘렸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물건값도 비쌌다. 컬렌은 이런 방식을 뒤바꿨다. 고객이 진열장을 돌며 직접 상품을 고르는 ‘슈퍼마켓’을 처음 선보인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점원 생활로 잔뼈가 굵은 그는 일찌감치 슈퍼마켓 아이디어를 냈다. 유명 체인점의 관리자로 일하며 회사 대표에게 슈퍼마켓 구상을 담은 편지를 보냈으나 답신이 안 왔다. 고민하던 그는 안정적인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장사 준비를 서둘렀다. 하필이면 창업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월가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으로 기존 잡화점마저 문을 닫았다. 컬렌은 이를 오히려 넓은 매장을 보다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매장을 준비한 그는 신문에 광고까지 실었다.
‘귀찮게 장바구니를 들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손수레를 몰고 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마음껏 골라 계산대까지 갖고 오면 됩니다. 포장까지 제공합니다.’ 카트와 종이봉투가 여기서 처음 등장했다. 고객들은 두 번 놀랐다. 편리함과 싼 가격에. 싼 가격의 이유는 간단하다. 일종의 ‘셀프서비스’여서 점원을 줄일 수 있었으니까. ‘상품을 높이 쌓아 싸게 팔자(File it high, Sell it low)’를 영업방침으로 세운 컬렌은 곧 ‘가격파괴자(Price Wrec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슈퍼마켓은 전 세계로 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통구조가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주목된다. 어떤 혁신이 우리의 삶을 바꿀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