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물론 바뀌어야 할 기관장도 많지만 과학기술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은 아닙니다. 과학기술 분야는 일관되게 장기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김도연(68·사진) 울산대 이사장은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최근 신성철 KAIST 총장 불기소 처분을 결정했다는 본지 단독보도와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며 관련 대학들과 과학계의 명예가 실추됐지만 (1년 9개월 만에) 뒤늦게나마 오해가 풀려 다행”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서울공대 학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장, 포스텍 총장을 역임한 과학기술계 원로다. ★본지 8월4일자 15면 참조
과기정통부는 지난 2018년 말 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KAIST 이사회에 직무정지를 요청했다. 신 총장이 2013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시절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에 장비 무상 이용이 가능한데도 사용료로 22억원을 보낸 뒤 일부를 제자인 임모 박사의 인건비로 지원했고 DGIST에는 그를 겸직교수로 채용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에서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물갈이를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진통 끝에 직무정지 건은 유보됐다. 신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장충초등학교 1년 후배이자 영남대 이사 출신이다.
김 이사장은 “과학기술계도 전혀 사리사욕이 끼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분야보다 훨씬 합리적 사회라는 신뢰를 갖고 있다”며 “잘못된 경우는 일벌백계 하는 게 틀림없지만 정권 차원에서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국가가 잘되게 하고 세계적 리더가 되자고 하는 데 이념이 끼어들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역설했다. 과기정통부가 검찰에서 불기소 통지를 받은 뒤 더 이상 이의제기를 안 하는 게 모양새도 좋고 미래로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조언도 했다.
차제에 과학기술계 리더십 혁신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따랐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다. 김 이사장은 “조그만 연구를 해도 2~3년은 해야 성과가 나오는데 하물며 기관장을 정권이 바뀐다고 교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미국처럼 임기를 정하지 않고 성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사립대 총장 임기도 국공립대에 준해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임기가 KAIST·DG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와 국공립대 총장은 4년, 정부출연 연구원장은 3년에 불과해 중장기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고 그나마 정권에 따라 도중에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학계 일부와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12명의 연구기관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는 “일본조차 몇 년 전에 국공립대 총장의 임기를 6년으로 늘렸고 미국 밴더빌트대는 150년 역사에서 이번에 9대 총장이 취임하는 등 장기적 리더십을 중요하게 본다”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과학기술은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국가가 지원해야 성장할 수 있는 분야라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정치가 과학기술에 관여할 수밖에 없고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어떤 정치이념을 앞세워 정치인이 개입하는 것은 안 된다. 전문가한테 맡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요즘 화두 중 하나인 그린뉴딜의 경우 이명박 정부 때 녹색성장 얘기가 처음 나왔으나 박근혜 정부에서 완전히 쓰지 못하게 하는 등 정치적으로 접근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라는 에너지 전환 정책도 원전 마피아의 저항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전문가보다 정치인이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