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는데 이미 올해 예정된 적자국채 규모가 97조6,000억원에 달한다. 애초 계획보다 37조원이나 많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재정이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기재부 “예비비와 기존 예산 활용 우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복구 재정지원과 관련해 “재해 대책 예비비 1조9,000억원, 일반 예비비 7,000억원 등 총 2조6,000억원의 예비비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호우 피해 복구에 예비비를 모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원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에 일반 예비비 1조4,000억원과 목적 예비비 2조원 등 총 3조4,000억원을 편성한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1~3차에 걸쳐 약 2조5,000억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홍 경제부총리는 이날 자신이 주재한 기재부 확대 간부회의에서도 “기정(확정) 예산, 재해대책 예비비 지원 등 재정 지원에 ‘속도전을 벌인다’는 자세로 신속히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4차 추경 편성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정치권의 4차 추경 편성 요구를 일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무엇보다 기재부는 재난대응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수해 피해 규모와 복구 예상액을 파악하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추경 없이도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는 기정 예산 이·전용과 예비비 등을 통해 조치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가용한 예비비와 기존 편성 예산 중 불요불급한 사업 예산을 전용하면 수해 복구에 쓸 수 있는 재원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기재부는 법상 다음 달 3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달 말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기재부로서는 본예산과 함께 추경안 심사까지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4차 추경안이 제출된다 하더라도 본예산과 함께 심사가 이뤄져야 하는 등 애로점이 적지 않다.
전문가 “정치적 재정운용 심각”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코로나19 영향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추가 재정여력을 축적해놓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 국민 지급에 반대했다. 그는 재정여력과 국채발행 규모 등을 감안해야 한다며 소득 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정치권 압박에 맞선 소신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권의 압박에 12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돼 전 국민 지급이 이뤄졌다.
이번 수해 지원을 위한 4차 추경이 이뤄지면 추가적인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5조1,000억원 규모의 3차 추경 때도 재정여력이 바닥나 23조원가량의 적자국채를 찍어 재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앞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경 때도 3조4,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과거 2002년 태풍 ‘루사(4조1,000억원)’와 2006년 태풍 ‘에위니아(2조2,000억원)’ 때는 각각 4조1,000억원과 2조2,000억원 규모로 추경이 편성된 적이 있다.
빚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 없이 재정지출을 한 결과 재정 건전성은 무너져내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처음 40%를 넘어서며 43.5%로 오르게 된다.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는 와중에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자연재해까지 덮치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