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협정에서 영국은 지금의 이라크·요르단을,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레바논을 각각 차지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을 국제 공동관리구역으로 두기로 했다. 이미 유라시아 식민지를 거느린 영국은 석유 집산지를 확보하는 대신 프랑스는 이곳을 교두보로 삼아 유라시아 심장부로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랍 세력의 입장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물론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제국에 대한 저항을 독려하기 위해 아랍 민족에게 주기로 했다가 전쟁에서 유대인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결국 유대인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프랑스는 원래 기독교계 주민이 많은 레바논에 이슬람계의 트리폴리·시돈까지 붙여 1920년 레바논을 건국했다. 혈통으로는 아랍계와 아르메니아계,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12개와 이슬람 5개 등 17개 종파로 이뤄져 ‘모자이크 국가’로 불리게 된 이유다. 지금도 의회 의석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계가 절반씩 나눠 갖는 등 권력 안배가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 최근 레바논 베이루트항구에서 일어난 대폭발로 레바논의 사회·정치적 난맥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레바논의 한 청원 사이트에는 10년간 프랑스의 위임통치로 돌아가자는 청원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무능한 정부보다는 차라리 식민지배가 낫다는 것이다. 강대국의 패권 싸움 끝에 탄생한 레바논이 참사의 아픔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평화와 안정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오현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