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최영기 칼럼] 한국판 뉴딜, 1년짜리가 안되려면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기득권 허물기 위한 제도 개혁없이

투자 확대만으로 선도국가 못이뤄

정부 단기성과에 매몰·독점하지 말고

여야 정책경쟁 통해 비전 공론화해야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대한민국 대전환의 국가전략으로 띄웠던 한국판 뉴딜은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정재계 인사들까지 참석한 국민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새로운 100년을 위한 담대한 구상이라며 160조원의 190만개 일자리 계획을 발표했지만 특별한 감동이나 놀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간의 관심은 오히려 임기 2년을 남긴 대통령이 왜 5년 계획을 세웠으며 재원 조달은 어떻게 할지, 일자리가 단기 알바 수준은 아닌지에 쏠렸다.

정부도 차가운 시장의 반응에 주눅이 들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대전환의 국가전략’ 또는 ‘선도국가 비전’에 대한 깊은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한국판 뉴딜에 대한 공론화에 전혀 힘을 쏟지 않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지난 1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과 15일 8·15 경축사에서 ‘한국판 뉴딜의 강력한 추진’으로 우리 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가 중 1등의 성장률을 보이며 가장 선방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100년 또는 5년을 내다보는 정책을 짰다고 말은 했지만 정부가 목을 매고 있는 실적치는 기껏해야 1~2년의 경기 동향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한국판 뉴딜은 오는 2025년까지 재정계획을 세웠지만 예산 주기로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온전히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회계연도는 2021년 한 해뿐이라는 시장의 계산법을 무시할 수도 없다. 다만 지금은 우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모범적으로 대처하며 향후 펼쳐질 디지털 경제에서 선도국가로 나설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 특별한 시기라는 점을 참작할 필요는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가 좀 더 도전적이고 장기적인 구상을 들고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4대 부문 구조개혁과 정보화 투자에 매진할 때의 긴 호흡이나 노무현 정부가 개방적인 통상국가를 내세우며 전방위적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을 구사할 때의 도전의식이 아쉽다. 더구나 지금은 한국 경제가 생산성 위기와 불평등 위기를 동시에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다. 선도국가 구상은 식상한 경제력 평가 중심의 선진화 담론과 달리 우리가 도전하고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국가혁신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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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가 비전에 대해 열린 자세로 정파를 초월해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공론의 장을 만들면 어떨까. 160조원의 190만개 일자리 계획은 그대로 두더라도 선도국가란 무엇이고 그 길로 가는 개념 설계도는 어떤 것인지에 관해 약간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선도국가라는 정책 플랫폼 안에서 미래사회로 나아가는 제도개혁 방안들에 대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토론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면 좋겠다.

지금은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과 기득권이 도전받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매우 유동적이고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기다. 그동안 당연시했던 생활 방식과 일하는 방식이 근본부터 바뀌며 모든 분야에서 풀뿌리 혁신이 가능한 시대로 들어섰다. 정책 당국이 사회 구성원들의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혁신을 가로막는 도처의 기득권을 허물기 위한 제도개혁 노력은 포기한 채 겨우 몇몇 유망 산업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만으로 선도국가로 나설 수 있을 듯이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어떤 시대라도 대전환은 수많은 이해관계의 재편을 불러오고 이에 따른 사회갈등도 정부 혼자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10년에 걸쳐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는 것조차 기득권의 벽에 막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차라리 공론화를 정치권이 주도하는 방법도 있다. 곧 펼쳐질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와 2021년도 예산 심의 그리고 내년 이후 전개될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가 비전에 대한 여야의 정책 경쟁은 국민적 기대를 모을 수 있다. 정부가 단기 성과에 매달리거나 코로나 위기 극복의 성과를 독점하지 말고 선도국가에 대한 건설적인 사회적 논의의 밑자락을 깔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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