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리건주 주얼초등학교는 신체와 장기를 4차원(4D) 이미지로 하나씩 분리해서 살펴보고, 근육과 골격 구조의 관계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다크리가 개발한 스마트 글라스를 통해 아나토미 4D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다. 플로리다주와 조지아주의 여러 중학교에서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과목에서 ‘zSpace’의 증강현실(AR) 콘텐츠 등을 활용해 생동감 있는 수업을 한다. 털리도대 의대를 비롯한 50개 이상의 의대에는 아나토미지의 ‘가상 해부 테이블’을 활용해 인체를 탐험하거나 절단하는 실습을 한다. 이 시스템은 고려대 해부학 교실 등에서도 사용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영국·호주 등의 학교에서는 구글의 가상현실(VR) 기기인 카드보드를 쓰고 교육용 AR·VR 서비스인 엑스퍼디션(Expeditions)을 통해 세계적 랜드마크나 명소를 가상체험할 수 있게 한다.
호주 캔버라그래머스쿨 중·고교생은 마이크로소프트의 VR 기기(홀로렌즈)를 쓰고 생물·화학·물리·수학 수업을 받는다. 심장이 팽창과 수축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태양계를 3차원 이미지로 관측하는 식이다. 미국 피어슨이 홀로렌즈를 활용해 호주의 중·고등 교육기관들과 혼합현실 교육 콘텐츠를 개발한 덕분이다.
일본의 정보기술(IT) 기업인 드왕고가 설립한 N고등학교에는 교실이 아닌 인터넷과 VR을 통해 교육이 이뤄진다. 신입생들이 VR 헤드셋을 끼고 VR에서 치른 입학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교실혁명’이 일어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원격교육의 정착과 함께 VR·AR을 활용한 교육의 확산도 이뤄지고 있다. 마치 게임처럼 수업이 진행돼 흥미를 유발하며 몰입도를 높이고 주도적·능동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제러미 베일렌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실감 콘텐츠는 위험하고(dangerous), 체험할 수 없고(imposible), 비용이 많이 드는(expensive) 분야 등에 활발히 적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교육부는 ‘국가교육기술계획 2017’을 통해 학습·교수·리더십·평가·인프라에서의 기술활용을 위한 비전을 수립했다. 앞서 2016년에는 VR·AR을 활용한 차세대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EdSim 챌린지’를 개최했다. 파머 러키 오큘러스VR 창립자는 “VR이 교육산업과 결합하면 무궁한 잠재력이 생길 것”이라며 “VR이 교육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2016년 AR을 활용한 교육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8년 5년간 약 1조8,000억원을 투자해 정보통신기술(ICT) 학습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2018년에 2020년까지 3전2고1대(三全二高一大)를 실현하기로 했다. 3전은 모든 교사와 학생의 ICT 활용과 디지털 캠퍼스 구축, 2고는 교사와 학생의 정보화 소양과 응용 수준 제고, 1대는 인터넷과 교육 결합 플랫폼 구축을 뜻한다.
미·중·일 시스템에 대대적 투자
한국도 2025년까지 18.5조 투입
디지털·친환경 첨단학교로 대전환
업계도 VR접목 콘텐츠 개발 박차
우리나라는 한국판 뉴딜의 10대 과제로 전국의 노후 학교 2,835동을 디지털과 친환경 기반 첨단학교로 전환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을 선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서울 창덕여중에서 “그린 스마트 스쿨을 우리 교육의 방식과 사회적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지역과 국가의 대전환을 이끄는 토대로 만들겠다”며 오는 2025년까지 총 18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부터 일부 초등학교에 AR을 접목한 스포츠교실을 열었고, 교육부는 2024년까지 모든 학교에 ‘지능형 과학실’을 마련해 VR·AR을 활용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과학·사회 등과 진로체험에 VR·AR 콘텐츠를 연계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교육에 기술을 접목한 에듀테크를 해외 진출 13대 유망 산업에 포함시켰다.
업계에서는 아일랜드 이머시브VR교육이 개발한 가상교실 플랫폼인 인게이지(Engage)가 체험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어 호평을 얻고 있다. VR 기기 시장에서 오큘러스와 함께 점유율이 높은 대만의 HTC는 올 3월 인게이지를 통해 중국의 한 콘퍼런스(VEC)를 VR로 대체했다. KT도 인게이지를 활용해 강의를 듣거나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고, 청담러닝과 함께 VR 여름 어학연수를 실시했다.
천재교육은 올해 초 에듀XR을 통해 과학·역사·사회 등 중등 교과와 연계된 200개 이상의 AR·VR 콘텐츠를 구축했다. LG유플러스는 아이스크림미디어·EBS와 손잡고 AR·VR 콘텐츠 플랫폼(톡톡체험교실)을 통해 문화재와 명소·동식물 등을 생생하게 교실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VR 스타트업인 브래니는 나름 수준 높은 VR 교실(쿠링 XR클래스) 구현에 나섰다.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캐릭터, 멀티디바이스 사용, 실시간 채팅 기술 등을 VR에 접목해 체험형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글로벌 출판사와의 협업도 확대하고 있다. 정휘영 브래니 대표는 “학교에서 저가 VR 기기로 학생들이 멀미나 어지러움증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게임에서 축적된 우수 VR 개발 인력이 많고 5세대(5G) 통신에서 앞서 있어 교육과 산업 등에 접목해 도약할 기회를 맞고 있다”고 평했다.
VR 콘텐츠는 국방·산업·의료 분야에서 교육·훈련 극대화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정 대표는 “건설장비나 비행기의 조종 시뮬레이터, 디지털 의약품 등 의료 분야에서도 VR의 전망이 밝다”며 “다만 플랫폼·네트워크·HMD(VR헤드셋)·콘텐츠 핵심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70%에 달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원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디지털제조혁신팀장은 “교육과 접목한 VR·AR은 ICT 시장과 교육 시장을 크게 변화시키고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