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세 손가락 경례




미국 작가 수잰 콜린스가 2009년 펴낸 SF소설 ‘헝거 게임(The Hunger Game)’의 주 무대는 북미 대륙에 세워진 가상의 독재국가 ‘판엠’이다. 판엠의 12개 구역이 권력과 부가 집중된 수도 캐피털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로 끝나고 공포 정치가 본격 시작된다. 독재 정부로 상징되는 캐피털은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며 서바이벌 게임인 ‘헝거 게임’을 만든다. 반란 지역인 12개 구역에서 12~18세 청소년을 뽑아 야외 경기장에 풀어놓은 뒤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매년 벌이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모든 과정이 TV쇼를 통해 24시간 생중계된다는 점이다.


소설은 영화와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시리즈 1편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에서는 16살 소녀 캣니스 에버딘이 여동생을 대신해 헝거게임에 자원하자 그에 대한 존경과 지지의 의미로 12구역 주민들이 세 손가락을 펼쳐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부터 검지·중지·약지를 펼쳐 하늘로 향하게 하는 ‘손가락 경례(Three-finger salute)’는 독재에 반대하는 저항 정신과 함께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는 의미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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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세 손가락 경례’가 최근 태국 시위 현장에도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주말 태국 시민 2만여명이 수도 방콕의 민주주의 기념비 앞에 모여 군부 제정 헌법 개정, 의회 해산 및 총리 퇴진, 왕실 개혁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지난달 18일부터 한달째 반정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당국이 3월26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최대 규모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조회 시간에 태국 국가가 울릴 때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영상과 함께 ‘독재에 반대한다’는 해시태그(#) 문구를 달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태국에서는 2014년 5월 군부 쿠데타 당시 대학생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한 후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의미로 자리 잡았다. 젊은이들이 하늘을 향해 펼쳐 든 세 손가락이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민정 논설위원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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