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사흘 만에 다시 300명대로 올라선 엄중한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총파업을 강행했다. 막판 협상에 나서며 한층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던 의사단체와 정부는 ‘결렬’과 동시에 전면전에 돌입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고, 사직서까지 꺼내 든 의사들은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당할 경우 전 회원의 무기한 파업을 예고하며 맞섰다.
대한의사협회가 전국 의사 총파업에 나선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원칙적인 법 집행을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 같은 대통령의 지시를 전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8·15 종각 기자회견’ 이후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겨냥해 “방역에는 특권이 없다. 엄정히 대응하라”고도 했다.
국민을 앞세운 정부는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날 오전8시를 기해 수도권 전공의와 전임의들에게 진료개시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과 행정처분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동네의원에도 휴진율이 10%를 넘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판단에 따라 행정력을 발동하기로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주재한 범정부대책회의에서 “무단으로 현장을 떠난 전공의 등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제재 조치를 신속히 단행하겠다”며 “의료공백으로 국민 생명이 위협받는 일을 내버려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vs 의사단체 강대강 대치
이에 반발한 일부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로 회피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이 역시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는 것(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분명히 있다”며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다음달 예정된 국가고시를 치르지 않겠다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시험은 예정대로 치르되 취소 신청은 본인 확인을 거쳐 그대로 접수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3,000여명의 신규 의사 배출이 늦어지더라도 원칙을 지킨다는 의지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한의사협회에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이날 서울 용산의 의협 사무실을 찾아 현장조사를 진행하며 협공을 펼쳤다. 의협이 1·2차 집단휴진을 결정하고 이를 시행한 것이 ‘해당 단체 소속 각 사업자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2차 총파업이 시작된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의협 궐기대회에서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후배 의사 단 한 명에게라도 행정처분이나 형사고발 등 무리한 행정조처가 가해진다면 전 회원 무기한 총파업으로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전공의와 전임의, 개원의까지 일제히 집단휴진을 예고한 이날 대학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파업 대오 아래 똘똘 뭉친 대형병원에서는 수술과 진료일정이 대거 미뤄지며 환자들의 불편이 속출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 핵심인 동네의원들은 오히려 대부분 정상 진료에 나서며 우려했던 ‘의료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데…수술 일정 밀려 분통
서울대병원은 이날 수술 건수가 60건으로 평소의 절반에 그쳤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수술방 운영을 대폭 축소했다. 전공의 공백으로 신규 입원환자를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수술 자체를 줄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일부 수술을 집도하기도 하는 전임의까지 파업에 가세해 상황은 악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대형병원을 찾은 한 50대 여성환자는 “코로나로 난리인데 이런 상황을 굳이 만들어야 하는지 정부와 의료계 모두에 의문”이라고 불평했다.
대형병원이 혼란을 겪고 있는 반면 이날부터 사흘간 집단휴진을 예고한 동네의원은 문 닫은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극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정오 기준 전국의 의원급 의료기관 3만2,787곳 가운데 2,097곳(6.4%)이 사전 휴진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휴진율이 32.6%에 달했던 만큼 이날 실제 파업에는 더 많은 동네 의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진료에 나선 것이다.
의사들간 의견차에…파업 참여율 저조
다만 부산의 경우 동네의원 휴진율이 전날 22.2%에 달해 휴진율 30%가 넘은 서구와 강서구에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는 등 지역에 따라 파업 참가율이 높은 곳도 있었다.
정부의 강경 대응 입장과 동네의원들의 예상보다 저조한 파업참가로 일선 의사들 사이에서 적잖은 혼란도 관측된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전공의는 “선배들 눈치에 어쩔 수 없이 파업에 동참하는 경우도 있다”며 “내부에서는 출구전략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한민구·심기문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