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부-의료계 여전히 평행선…지켜보는 국민들만 '불안'

[의사국가시험 일주일 연기]

강경하던 정부 한발 물러섰지만 '의료정책 철회 불가' 방침은 여전

의료계는 교수까지 반발 거세…타협점 못찾으면 '일시봉합' 그칠듯

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 접견실 앞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교수 70여 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연합뉴스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 접견실 앞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교수 70여 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연합뉴스



전공의·전임의들의 집단 진료거부와 의대생들의 의사국가시험 보이콧에 강경대응 방침을 이어가던 정부가 9월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시험 일정을 일주일 미루며 한발 물러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정협의체를 통해 의사들의 요구사항을 청취하겠다”면서도 의사들의 진료현장 복귀를 재차 촉구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로 파행으로 치닫던 갈등이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의대정원 확대정책 등의 철회가 불가하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타협점을 찾을 때까지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시 일주일 연기로 파국 피했지만…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31일 ‘전공의단체 진료거부 대응 관련’ 온라인 브리핑에서 “의대생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일주일 연기한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당초 응시 신청자 3,172명의 89.4%인 2,835명(28일 오후6시 기준)이 응시취소·환불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그간 시험준비를 해온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당초 계획대로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시 파행으로 신규 의사 배출이 중단될 경우 인턴 모집과 공중보건의·군의관 수급까지 모조리 꼬이는 또 다른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 일주일간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대통령도 설득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가) 여러 차례 양보안을 제시했고 협의체에서 의료지역 불균형 해소와 공공의료 확충만이 아니라 의료계의 제기 사항도 협의할 수 있다”며 “업무에 복귀하는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고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시 일정을 연기하며 한발 물러선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는 상황에서 의대 대학생·전공의·교수 등 의료계 전체가 의대정원 확대 등 정부 정책 철회를 촉구하면서 집단휴진에 들어가는 등 강하게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정부가 기존 정책 추진 철회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어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의료계와의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전임의 줄줄이 사직서
정부가 의대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던 의사국가시험 일정을 일주일 연기하면서 극단적 파국은 피했지만 이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부는 그동안 정부 정책 추진에 반발해 집단 진료거부로 대응한 의사들을 강제로라도 진료현장에 앉히겠다며 행정명령과 경찰 고발에 이어 의사 국가시험 강행 의지까지 내비치는 등 초강수로 대처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강공 드라이브는 설득을 통한 합리적 타협 도출은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의료계의 투쟁 의지만 가열시켰다. 전공의·전임의들은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고 의대생 대다수는 시험을 하루 앞둔 31일까지 보이콧을 풀지 않았다. 의대 교수들마저 제자들이 피해를 본다면 집단행동에 힘을 보탠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전공의를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기로 한 가운데 의대생들도 항의표시로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31일 오후 광진구 자양동 한국보건의료인시험원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이호재기자전공의를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기로 한 가운데 의대생들도 항의표시로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31일 오후 광진구 자양동 한국보건의료인시험원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이호재기자


예상보다 강력한 의료계의 반발에 정부는 국시 연기라는 카드를 꺼내 들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의대 정원 확대 등 주요 정책의 ‘철회’ 혹은 ‘원점 재검토’ 불가 입장을 유지하면서 정책 추진 ‘중단’을 마지노선으로 못 박고 있다. 정책 백지화를 요구해온 의료계와의 시각 차가 워낙 크다. 결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의료계의 요구를 고려해 타협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번 국시 연기는 일시적 갈등 봉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무기한 총파업을 시작한 지 11일 차인 31일 오전까지만 해도 강공을 이어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비수도권 수련병원의 응급실·중환자실 10곳에 대해 3차 현장조사를 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지난 26∼27일 수도권 수련병원 20곳을 1차 현장 조사한 데 이어 28일부터는 수도권 10곳과 비수도권 10곳 등 20곳에서 전공의 등의 휴진 현황을 2차로 확인한 뒤 이들의 복귀 여부를 파악했다. 28일에는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은 10명의 의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이날 의사 고발 사건을 접수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정했다.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며 해당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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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본격적인 행정권 발동은 오히려 의사들을 결집시켰다.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애초 내건 집단휴진 의지를 굽히지 않으며 예고한 대로 집단 사직서 제출에 나섰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953명 중 895명(93.9%), 전임의 281명 중 247명(87.9%)이 업무 중단을 선언하고 사직서 제출에 참여했다. 다만 코로나19 선별진료소는 봉사 형태로 참여했다. 백창현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과 약속했던 코로나19 진료는 지속할 것”이라며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철회한다면 모든 전공의는 지체 없이 일터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 등 서울대병원 계열에서 근무하는 전임의들도 동참했고 고려대 구로병원을 시작으로 고려대 의료원 소속 의사들도 사직서를 냈다. 의대 교수들도 제자들을 응원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날 현장조사에 나선 경북대병원과 계명대 동산병원에서는 공무원 동선을 따라 교수진이 길게 줄을 서 팻말을 들고 정부의 정책 추진 강행을 비판했다. 김상걸 경북대 의대 교수회 의장은 “빌미를 제공한 건 정부”라며 “잘못된 정책을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예상됨에도 밀어붙이는 것에 전공의들이 문제를 제기한 건 교수로서 봤을 때 정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은 입장문을 내고 “부당한 공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려는 젊은 의사를 겁박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전공의 중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교수 일동은 사직을 포함한 모든 단체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지어 대학생들도 참여했다. 졸업을 앞둔 의대생들은 자칫 의사 면허 취득이 1년 미뤄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단결력을 유지하며 10명 중 9명이 국시 응시를 취소했다. 김성윤 가톨릭의대 학장은 “연간 3,000명 수준의 새내기 의사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로 그 규모가 10% 정도로 줄면 당장 내년 인턴 모집은 물론 공중보건의·군의관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긴다”며 “의사 국시를 국가 사회적 안목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 "지금 외래 접수하면 11월에나 진료"…국민들만 발동동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외래 진료를 접수하면 진료과목에 따라 최장 오는 11월에나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의사 진료 이후에 다시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해 내년이나 돼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초기 암 환자라면 중기나 말기로 악화한 뒤에야 수술대에 오르는 셈이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90%, 전임의 50%가 파업에 참가해 이번주 들어 사흘 연속 수술 절반 이상이 연기됐다”며 “교수진이 수술과 입원환자 회진까지 모두 맡느라 신규 외래 진료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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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이 무기한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31일 전국 대형병원에서 환자들은 수술 연기와 외래 진료 지연 등으로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상급종합병원은 평소에도 첫 진료 예약시 한 달 뒤에 잡히는 게 예삿일이었지만 현재는 두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 같은 의료차질은 단순한 불편에서 끝나지 않고 환자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치료가 지연됨에 따라 암 환자의 경우 종양이 더 자라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등 경증이 중증으로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2~3월 대구·경북 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건강검진 시기를 놓친 환자 가운데 경증이 중증으로 심화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며 “이번 파업에 따른 지연도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공의 무기한 집단휴진 지속을 결정한 가운데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전공의 무기한 집단휴진 지속을 결정한 가운데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날부터 내과 외래 진료를 축소한 서울대병원의 경우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예약환자 가운데 10~20%는 사전에 일정이 연기돼 제때 진료를 받지 못했다. 이날 내과 외래 예약환자 수는 2,609명으로 8월3일(2,902명) 대비 10%, 8월10일(3,343명) 대비 22% 줄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진료 연기가 가능한 외래환자 일부의 일정을 미루는 등 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공의·전임의들이 잇따라 가운을 벗은 뒤 의료 현장 곳곳이 차질을 빚자 환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병원을 찾은 60대 여성 환자는 “코로나19가 한창 퍼지고 있는데 이런(파업) 상황까지 겹쳐 몹시 불편하고 걱정이 된다”며 “이 지경까지 만든 정부도 문제고, 의사들도 꼭 이래야 하나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즉시 입원 가능한 중증환자 병상 39개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위중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이들을 치료할 병상은 동나고 있다.

광주·대전·강원·전북·전남에는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중증 환자 치료 병상이 단 한 곳도 없고, 충남·경남도는 1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수도권도 317개 병상 중 고작 10개(서울 5개, 경기 3개, 인천 2개)에 불과하다. 중증환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현재의 증가 속도가 계속 이어질 경우 ‘병실 대란’이 우려된다.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국 533개 병상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전국에 걸쳐 55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이들 중에서도 인력과 장비를 완비하고 환자를 맡아 치료할 수 있는 병상은 39개뿐이다.

31일 오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적십자병원 앞에서 한 관계자가 병실에 설치할 이동형 음압기 포장을 풀고 있다. 서울시는 9월 1일부터 140병상 규모의 서울적십자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31일 오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적십자병원 앞에서 한 관계자가 병실에 설치할 이동형 음압기 포장을 풀고 있다. 서울시는 9월 1일부터 140병상 규모의 서울적십자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병상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은 광화문 집회발 집단감염을 중심으로 고위험군인 고령 확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코로나19 중증·위중 환자는 79명으로 2주 만에 무려 9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18일만 해도 9명에 불과했던 중증·위중 환자는 19일 12명으로 늘어난 후 가파르게 증가했다. 8월15일 대규모 집회 참석자들 중에 면역력이 약한 고령자들의 확진이 급증하면서 중증·위중 환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9월 초까지 중환자가 약 130명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족한 병상을 마련하기 위해 오는 9월14일까지 병상 40개를 추가로 확충하고, 병세가 호전된 환자들은 경증병상 등으로 옮겨 병상을 확보할 계획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환자가 집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도 보건소에서 호흡 곤란 등 증상발현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 건강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광주 지역의 경우 감염병 전담병원 40병상을 추가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웅재·임진혁·허세민·이주원기자 liberal@sedaily.com

임웅재·임진혁·허세민·이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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