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7)씨는 지난 2일 여윳돈 조금에 마이너스 통장과 예금담보대출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카카오게임즈의 공모주 청약 증거금으로 1억4,000만원을 넣었다. 청약 첫날부터 경쟁률이 급등하면서 1억원을 넣어봐야 2~3주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불과 두 달 전 SK바이오팜 공모주 대박의 선례를 보고 나니 포기할 수 없었다. 이씨는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은 기본이고 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비싼 주식담보대출까지 받았다는 사람들도 주변에 적지 않다”며 “요즘 같은 저금리에 단 몇 주라도 받아 수십만원이라도 이익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행 신용대출 시장이 공모주 열풍에 출렁이고 있다. 59조원의 역대 최대 증거금을 끌어모은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이 진행된 이달 1~2일,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이틀 만에 4조7,000억원 가까이 폭증했다. 사상 최대치였던 8월 한 달간 이들 은행의 신용대출 증가분인 4조여원을 넘어선 규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카카오게임즈 공모를 위해 은행 대출을 받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폭증세”라고 말했다.
초저금리로 시중 자금이 넘쳐나는 가운데 투자처에 목마른 뭉칫돈은 물론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빚투(빚내서 투자)’ 자금이 공모주 대어에 쏠리는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6월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의 청약 광풍을 지켜본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미 다음달 예정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공모주 청약에 쏠렸다. 특히 종잣돈이 부족한데다 부동산값 폭등을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이 큰 젊은층이 주식투자에 뛰어들면서 빚투 열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128조9,233억원으로 지난달 31일보다 4조6,486억원 불어났다. 사상 최대 월간 증가액을 기록한 8월 한 달(4조704억원)보다 더 많은 금액이 불과 이틀 만에 늘어난 것이다.
유례없는 신용대출 폭증은 같은 기간 진행된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1~2일 이틀간 진행된 카카오게임즈 일반투자자 공모주 청약에는 59조원이 몰렸다. 특히 SK바이오팜이 상장 직후 ‘따상(상장 첫날 거래 가격이 공모가의 두 배로 뛴 뒤 상한가 직행)’에 이어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전례를 보며 투자자들 사이에는 이씨처럼 “빚을 내서라도 단 몇 주라도 더 받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신용대출 금리가 최저 1.8~3.6%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신용도가 좋은 투자자의 경우 이자 부담도 크지 않다. 실제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이달 1일 하루 만에 1조8,034억원, 2일에는 2조8,452억원 늘었다. 예년에는 이들 은행의 일평균 총잔액 증가액은 수백억원, 많아야 1,000억원 수준이었다. A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이 일 단위로 이렇게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전날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 대출 상품에 접속 지연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동학 개미’에서 시작된 빚투 광풍이 갈수록 세를 불리면서 신용대출 증가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인터넷전문은행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은행에서 스마트폰 터치 몇 번만으로 간편하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대출 문턱을 낮췄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은 부동산 대출에 비해 규제가 약한데다 실행 절차도 대폭 간편해져 앞으로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