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키170cm의 신라여성?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 출토

신라 황남120-2호분 발굴성과

1970년대 황남대총 이후 첫 발굴

유례없는 형식의 금동관

일본에 영향끼친 증거일 수도

경주 황남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위에서부터)과 금드리개, 금귀걸이와 가슴걸이 등이 무덤주인이 착장한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경주 황남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위에서부터)과 금드리개, 금귀걸이와 가슴걸이 등이 무덤주인이 착장한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무덤을 채운 돌과 흙을 걷어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붙이로 장식하고 누운 무덤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 중 가장 화려한 금동관(冠)을 얼굴에 덮은 피장자는 양쪽 귀에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태환이식)를 걸고 가슴걸이,은허리띠,은팔찌와 구슬팔찌를 비롯해 손가락마다 은반지를 착용한 채 금동 신발까지 신고 있었다.

문화재청이 경상북도·경주시와 함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지난 2018년 5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경주 황남동 120호분에서다. 정확히는 여러 명이 묻힌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이다. 관부터 귀걸이 팔찌를 비롯해 금동신발까지 일괄로 출토된 것은 지난 1973~75년 발굴조사가 진행된 황남대총 이후 처음인 일이다.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사진제공=문화재청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사진제공=문화재청




경주 황남120-2호분의 무덤주인의 착장 장신구들이 노출된 당시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경주 황남120-2호분의 무덤주인의 착장 장신구들이 노출된 당시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의 상황 등을 고려해 3일 오후 2시 문화재청 유튜브를 통해 현장 공개 설명회를 진행했다.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5월 27일 황남동 무덤의 시신있는 자리 쪽에서 금동신발과 금동달개(瓔珞) 일부를 확인했다고 발표하면서 심상치 않은 유물의 존재 가능성을 감시했다. 이후 추가로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무덤주인이 착장상태 그대로 간직한 장신구들이 확인됐다. 이들 유물은 6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무덤주인의 키는 170㎝ 내외로 추정된다. 굵은고리 귀걸이를 착용한 것으로 미루어 여성이 가능성이 높게 제기된다. 큰 칼이 아닌 장도를 지니고 발굴됐다는 점 또한 남성 아닌 여성 쪽으로 무게를 싣게 한다.


머리 부분의 금동관은 가장 아래쪽에 머리에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 형식의 관테(帶輪·대륜)가 있고, 그 위에 3단으로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 立飾·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鹿角形 立飾·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다. 관테에는 뒤집힌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됐고, 곱은옥(曲玉·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金製垂飾·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려 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으로 무늬를 뚫은 투조판이 있는데, 이 것이 관모(冠帽)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금동관 관테에 장식용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처음 발굴된 사례라 주목해야 한다. 투조판이 관모라면 경주 지역 돌무지덧널무덤의 관과 관모를 동시에 착장한 무덤주인이 발견된 첫 사례이며, 투조판이 관모가 아니라 관 장식 용도라 해도 현재까지 출토된 적 없는 새로운 형태라 관심을 끈다.

관련기사



하트모양의 구멍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일본 군마현(群馬縣) 금관총 고분의 금관에서 관찰되는 형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 이번 발굴 성과가 일본 군마현의 금관총 고분의 주인공이 신라 계통이거나 신라 문물을 받아들인 인물이었다는 근거로 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경주 황남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위에서부터)과 금드리개, 금귀걸이와 가슴걸이 등이 무덤주인이 착장한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경주 황남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위에서부터)과 금드리개, 금귀걸이와 가슴걸이 등이 무덤주인이 착장한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제작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胸飾·흉식)가 확인됐다. 보통 가는고리귀걸이는 남성용, 굵은고리귀걸이는 여성용이기에 무덤 주인이 여성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나왔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됐다. 작은 구슬로 이뤄진 화려한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됐다. 왼손 부분의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되면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이 높다. 천마총의 피장자는 양손에 같은 수의 반지를 손가락마다 끼고 있었다.

황남 120-2호분에서 출토된 은허리띠와 은팔찌, 은반지의 노출 상태. /사진제공=문화재청황남 120-2호분에서 출토된 은허리띠와 은팔찌, 은반지의 노출 상태. /사진제공=문화재청


황남 120-2호분의 구슬팔찌 복원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황남 120-2호분의 구슬팔찌 복원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금동신발의 앞판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어 장식했고,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측 관계자는 “1960년 의성 탑리 고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면서 “현재까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관과 신발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사지내어 보내는 의례용으로 알려져 왔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鐵鼎)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논의가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