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미래대비 구조조정 부진에 코로나까지..."폐공장엔 부품만 수북"

[국가산단 부도 공포 엄습]

울산 수백개 車협력사 중 전장부품 생산은 2~3곳에 불과

일감 없어 직원들 '투잡'...공단엔 마스크 공장만 우후죽순

정부서 부지 매입, 신산업 기업 입주 등 세심한 정책 필요

6일 울산 북구 연암동에서 경매로 나온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공장 내부 모습. 칠판에는 납품 계획이 쓰여져 있다. /울산=양종곤기자6일 울산 북구 연암동에서 경매로 나온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공장 내부 모습. 칠판에는 납품 계획이 쓰여져 있다. /울산=양종곤기자






6일 현대자동차 시트공장과 부품 업체가 밀집한 울산 효문공업단지 초입에서 38년간 매운탕 장사를 해온 홍모(71세)씨는 ‘경기가 어떠냐’고 묻자 대뜸 “최근 부도난 업체가 있으니 가보라”고 했다. 홍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장 야근이 아예 사라져 점심장사로 버텨왔다”며 “최근에는 벌이가 더 악화돼 집세도 못 낼 판”이라고 혀를 찼다.

그가 일러준 폐공장 안에는 ‘현대차 모델 납품용’을 뜻하는 이름표가 붙은 부품들이 선반에 쌓여 있었다. 약 1,000평 규모인 이 공장 경매는 두 번이나 유찰됐다. 인근에 있는 A부동산 대표는 “지난해부터 현대차 2차·3차 벤더 공장이 매물로 많이 나와 있는데 내놔도 도통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찾은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도 사정은 엇비슷했다. 가동률이 30%를 간신히 넘기는 곳이 많아 주 3~4일 근무하고 금요일은 일찍 문을 닫아버리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늦은 오후 무렵만 되면 파장 분위기라 저녁에는 불야성은커녕 야근하는 곳이 없어 공단이 썰렁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미 공단동 B부동산 대표는 “시대를 못 따라가는 전자부품회사나 섬유회사 등 사실상 시한부에 가까운 곳이 많다”며 “젊은이는 비전 없는 공단을 떠나고 비어가고 있는 공단에는 마스크 공장만 들어서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6일 울산 북구 연암동에서 경매로 나온 한 자동차 부품 업체 모습. 선반 위에는 납품하지 못한 부품이 쌓여 있다. /울산=양종곤기자6일 울산 북구 연암동에서 경매로 나온 한 자동차 부품 업체 모습. 선반 위에는 납품하지 못한 부품이 쌓여 있다. /울산=양종곤기자


◇‘1등 부자 도시’ 울산 공단에 번지는 부도 공포

자동차와 조선사가 밀집한 울산은 국내 최고의 부자 도시로 손꼽힌다. 주력 산업이 잘나가던 지난 2010년대 중반 무렵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울산의 자부심은 어느덧 한숨으로 바뀌고 있다. “체감경기는 외환위기(IMF) 당시보다 더 안 좋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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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만 해도 울산에 있는 1~2차 완성차 협력부품 업체 수백개 가운데 전장 부품을 만드는 곳은 2~3개사에 불과하다. 내년에 현대차가 30만대의 전기차를 만들 계획임을 감안하면 사업 전환에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성차 업체들이 전속거래를 줄이면서 부품사의 각자도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영세한 부품 업체들은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등을 통한 살길 모색보다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처신하고 있다”며 “정부와 완성차 업체가 부품사의 사업 전환에 속도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 대비를 위한 구조조정 부진에, 코로나 불황까지 겹치며 올 7월 울산 어음부도율은 1.88%까지 치솟았다. IMF 시절 1998년 2월(2.05%)에 근접한 수치로 울산에서 융통되는 어음 100개 중 2개가 어음부도라는 뜻이다. 전국 평균(0.05%)과 비교하면 얼마나 심각한지 극명히 드러난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유명한 향토기업 신한중공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 부품업체 직원은 “해외영업이 아직 어려운 판에 8월 중순부터는 버팀목이었던 내수시장마저 코로나19 확산세로 힘을 못 쓰고 있다”며 “직원들이 격주로 무급휴무를 하며 사업을 끌고 가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낙수효과는 옛말…‘전자 메카’ 무색한 구미 산단

전자산업으로 성장한 구미 산단에는 ‘요즘 마스크 공장만 들어선다’는 말이 나돈다. 5월 이후에만 30여곳이 늘었다. 해외로 떠나는 대기업, 다락같이 오른 최저임금, 코로나발 불황으로 주력 제조업으로는 희망이 안 보여서다. 그나마 구미가 전자 단지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갤럭시Z 폴드2’ 등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혜택이 일부 부품사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중소기업 간에 온도 차가 극명하다. 실제 구미 산단의 6월 공장 가동률은 70%대인 반면 50인 미만 소형 공장은 40%대에 그쳤다. 대기업이 있으면 부품 중소기업이 잘된다는 낙수효과가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공단 인근에 자리한 한 부동산 대표는 “공단을 보면 더 이상 대기업 일감을 보고 제조하는 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며 “가족회사나 사장과 연구개발 이사 둘이 부품을 개발하고 생산을 외주하는 기업만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공단은 ‘엑소더스’가 더 심각하다. 고정비를 줄여 대출금이라도 상환할 요량으로 지방행을 선택하는 제조업체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떠난 곳에는 구미처럼 저부가가치 업종인 마스크 공장만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일감 기근에 수익이 줄어든 직원은 ‘배달’을 뛸 정도다. 시화공단의 관계자는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중소기업 사장도 직원들의 ‘투잡’을 못 막고 있다”고 말했다.

6일 경북 구미 공장동 구미국가산업단지 인근의 비어있는 상가 점포에 새 임차인을 찾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자리에 있던  떡집은 공단이 불경기를 겪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찾는 고객이 없어 1년 가까이 매출이 줄어만 들자 지난 8월 폐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기자6일 경북 구미 공장동 구미국가산업단지 인근의 비어있는 상가 점포에 새 임차인을 찾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자리에 있던 떡집은 공단이 불경기를 겪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찾는 고객이 없어 1년 가까이 매출이 줄어만 들자 지난 8월 폐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기자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이대로는 산단 내에서 소수 인원이 운영하는 경쟁력 없는 제조공장이 주인만 바뀌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 같다”며 “정부가 산단 부지를 적극적으로 매입해 신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입주시키는 방식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옥석 가리기만 강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게 문제”라며 “세심한 정책 디자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울산·시흥·구미=양종곤·박호현·이재명기자 ggm11@sedaily.com

양종곤·박호현·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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