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울 사무실에서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전북 익산의 비닐하우스에 있는 딸기가 얼마나 익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바깥 기후에 따라서 사물인터넷(IoT)으로 온도·통풍·습도 등을 조절해 농작물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드디어 몸으로만 일하던 농업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혁명을 맞이한 겁니다.”
신상훈(사진) 그린랩스 대표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스마트팜의 작동원리를 직접 설명했다. 그린랩스가 개발한 ‘팜모닝’ 솔루션을 활용하면 멀리서도 농장을 원격제어할 수 있다. 일손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빅데이터를 활용해 언제 물을 주고 얼마나 빛을 쪼이면 농작물이 더 잘 자라는지, 환경을 조절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어 획기적이라는 평가다.
지난 2017년 스마트팜 스타트업을 창업해 농업에 뛰어든 신 대표의 설명에서 어느덧 농업인의 노련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시계를 4년 전으로만 돌려보면 그는 강남 한복판에서 소개팅·데이팅 앱 ‘아만다’를 운영하던 창업자였다. 통통 튀는 젊은이들의 수요에 따라 누구보다 빨리 최적의 서비스를 만들던 그가 느리고 고리타분한 1차 산업, 농업에 인생을 건 것이다.
◇데이팅 앱 만들다 농업에 뛰어들다=8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그린랩스 사무실에서 만난 신 대표는 ‘왜 갑자기 스마트팜이냐’는 질문에 준비한 듯 “평생 풀어도 풀지 못할 정도 사이즈의 문제를 사업으로 풀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이름을 날린 연쇄 창업가다. 2011년에는 전자책 서점 ‘리디북스’를 운영하는 리디에서 투자자 겸 본부장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2013년에는 소개팅 앱 업계를 이끈 ‘아만다’를 만든 넥스트매치를 창업했다. 5년여간 소셜 데이팅 앱 시장을 이끌면서 매일매일 급변하는 트렌드를 다뤄왔다.
그러다 현재 그린랩스의 공동대표인 안동현·최성우 대표를 만나면서 사업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안 대표와 최 대표는 소셜커머스 플랫폼 ‘쿠차’의 창업자로 신 대표에게는 스타트업 업계 선후배였다. 그는 “작가에게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고 독자에게는 전자책의 편의성을 주는 ‘리디북스’,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낸 ‘아만다’도 그 안에서 비즈니스는 물론 사회적인 의미도 만들어냈지만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10년 가까이 사업을 하면서 진정 좋아하는 것은 아이템보다는 사용자의 편의를 향상해주는 사업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어떤 사업을 해야 가장 의미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분야가 농업이었다. 문제의 난도가 높을지라도 평생 사업해나갈 고민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식주 중 밑바닥을 받치고 있으면서 4차 산업혁명에도 가장 개발은 덜 된 사업 분야였다. 그렇게 창업자 셋이서 2017년부터 서비스 개발을 시작했고 신 대표는 2018년 본격적으로 그린랩스 대표로 합류했다. 그는 “이전에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 화면만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매주 김해·원주·익산 등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닌다”면서 “실제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인접사업으로도 확장하니 이 사업이 원래 체질인가 싶다”며 활짝 웃었다.
◇몸으로 뛰던 농부가 스마트해지다=최고의 앱 서비스가 제작한 스마트팜 솔루션은 농부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신 대표는 “기존 농가에도 정부 지원으로 스마트팜을 조성했지만 설비만 두고 떠나서 고장 나면 고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린랩스의 팜모닝은 설비와 연결해 지속해서 서비스되는 것을 보고 농부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만족해해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버전은 시중에서 치열한 경쟁 중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엉성했는데 그마저도 편의성을 급격히 향상시키는 것을 보고, 더욱 서비스 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1·2·3세대로 구분하는 스마트팜 중 그린랩스의 솔루션 ‘팜모닝’은 2세대에 해당한다. 1세대는 자동화된 하드웨어가 중심이라면 2세대는 이를 다양한 IoT 센서로 연결해 클라우드 기반으로 데이터와 함께 제어하는 게 핵심기술이다. 그린랩스도 2017년 기존 1세대 스마트팜 업체를 인수해 엔지니어링과 하드웨어 노하우를 흡수했다. 클라우드 서비스로 농장의 환경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최적의 생육정보로 농장시설을 관리해 농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게 목표다.
어느덧 그린랩스의 팜모닝을 이용하는 회원농가는 벌써 전국 2,600여곳에 이른다. 시설원예·과수원부터 축사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농부들의 편의는 물론이고 평균 30%의 생산성 향상을 자랑한다. 농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인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어떻게 해야 수확량이 늘어나는지 데이터가 누적되고 최근에는 태풍이 올라와도 전국의 스마트팜이 감지한 풍속과 강우량을 북쪽의 농가는 미리 알 정도로 활용도도 높다. 신 대표는 “기존 농가를 스마트팜으로 만드는 규모는 그린랩스가 가장 크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인공지능(AI)을 접목한 3세대 스마트팜도 가장 먼저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땅에서 밥상까지 종합 비즈니스 모델=그린랩스는 스마트팜 업계를 이끌면서도 더 큰 시장을 보고 있다. 지난해 매출 92억원에서 올해는 3배 이상 커진 300억원이 기대될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다. 누적 투자액도 10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애그테크(agriculture+technology)에 투입된 투자액만 64억달러(약 7조9,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농업은 지역별 환경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그린랩스의 기술력은 아시아권에서 먹힐 수 있을 것으로 신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벌써 지난해 10월 베트남 딸기 농가에 ‘팜모닝’이 진출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농가를 스마트팜으로 변환하는 사업이 계속되는 만큼 기본 수익 모델도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의 역할도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신 대표는 단호히 손사래를 쳤다. 그는 “기업의 이윤 추구 과정에서 자본주의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을 찾는 게 사업”이라면서 “쉽게 풀지 못한 게 농업혁신이라는 과제지만 여기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또 다른 도전이자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적으로 농부부터 개발자·엔지니어·마케터까지 다방면에 신규채용도 활발해 회사 규모 확장에도 힘쓰고 있다.
그린랩스는 스마트팜 생태계 육성과 더불어 농업용품 판매와 농작물 유통까지 다루는 종합 서비스를 추구한다. 신 대표는 “해외 선례는 물론 국내 경쟁자도 거의 없어 가는 길마다 개척지”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농민들과 함께 농업이 새로운 혁신동력이 될 수 있도록 서비스 기획과 기술력으로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