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직원 양반, 아마존 주식을 사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신한금융투자 해외주식영업부에 얼마 전 밤 11시 넘어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유독 깊은 연륜이 느껴졌다. 80대 노인이었다. 그는 “요즘 미국 주식을 많이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나도 미국 주식을 사서 나중에 우리 손자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부서 소속의 윤종민 주임이 ‘해외주식 열풍’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배당이나 종목 뉴스를 물어보는 고객이 많았죠. 하지만 올해는 주문 전화가 급격히 늘었어요.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도 그만큼 해외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거죠.”
직장인 김나리(33·가명)씨는 퇴근 후 매일 밤 10시부터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밤 10시30분(한국시각, 서머타임 기준) 미국 주식시장 개장을 앞두고 해외주식 커뮤니티, 외신 등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나선다. 김씨는 지난해 11월께 테슬라 주식을 산 이른바 ‘원정개미’다. 은행에 맡겼던 정기예금의 만기가 다가왔을 때였다. 금리가 낮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받아보니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테슬라 주식을 사보는 게 어떠냐고 남편이 말했다. 당시 테슬라의 주당 가격은 약 300달러 수준. 액면분할한 지금으로 환산하면 약 60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테슬라 주가는 주당 400달러를 넘는다. 1년이 안 되는 기간에 주가가 약 560% 오른 셈이다. 김씨는 현재 엔비디아 등 다른 주식도 보유하고 있다.
‘개미’들이 해외로 진격하고 있다. 과거 자산가 등 일부만 투자하던 해외주식은 이제 세대·계층을 가리지 않고 ‘주린이(주식 어린이를 뜻하는 신조어)’도 뛰어드는 시대가 됐다. 올해 처음으로 해외주식 거래 규모가 1,000억달러(약 120조원)를 넘어설 정도다. 앞으로 개인의 해외주식 직접투자 움직임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분위기다. 다만 해외주식에 대한 맹목적 낙관으로 뛰어드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주식을 사고판 거래 규모(9월14일 결제금액 기준)는 1,210억달러로 집계된다. 지난해 1년 동안 거래된 금액(410억달러) 대비 약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해외주식 거래 규모는 매년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해외주식 열풍의 중심에는 ‘2030세대’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는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까닭에 일간 등락 제한이 없는 해외주식 투자에 큰 거리낌이 없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강모(26)씨는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과 인턴을 하며 받은 급여로 7월부터 미국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며 “유튜브 등의 채널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시차를 제외하고는 미국주식 투자에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청년들만 해외주식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셋대우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해외주식 투자자를 분석한 결과 50대와 60대 이상이 각각 20%, 17%의 비중을 차지했다.
해외주식 투자가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 투자자들이 직접 종목을 발굴하고 정보를 공유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해외주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이를 둘러싼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외국인 이성이 수상한 주식 매수를 권유하는 일들도 나타난다. 하지만 해당 주식을 매수하면 며칠 내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가 잦다. 30대 싱글남인 조모씨는 “앱을 통해 알게 된 홍콩 여성이 자기 계좌를 보여주면서 중국주식 매수를 권유했다”며 “며칠 뒤에 보니 그녀가 말했던 주식은 하루에 90%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해외주식 투자의 성장세가 앞으로 더 가파를 것으로 보고 있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은 결국 기술주가 중심이고 국내보다 미국에 주요 기업이 포진해 있어 미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에 대한 선호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완기·심우일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