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단독] 여가부 보조금 1조원은 ‘눈먼 돈?’...자체 규정도 없었다

20년 간 자체 규정없이 집행

관리 소홀 지적에 뒷북 대응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7월 23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열린 20∼30대 여성들과의 ‘성 평등 조직문화 논의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자체 보조금 관리 규정도 없이 자금을 집행해오다 설립 20년째인 올해에서야 관련 지침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해 1조원 규모의 국고보조금 재정을 주무르는데다 연간 총재정의 87%를 보조금 사업에 쏟아붓는 여가부가 정의기억연대의 보조금 유용 논란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지침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부랴부랴 훈령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여가부는 정의연 논란이 발생한 지 2개월여 만인 지난 7월28일 ‘국고보조금 관리 규정’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5장·44조로 구성된 이 훈령은 보조사업 및 사업자 선정기준, 보조사업 집행관리, 보조금의 반환 및 제재 과정 등을 규정하고 있다. 사업부서의 장이 보조금 부정수급 대응 및 방지를 위해 부정수급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보조사업자가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 제재부가금을 부과·징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획재정부의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지침이 담지 못하는 실무 차원의 대응 지침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에 따라 보조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보조금의 중복수급이나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보조금 관리의 효율성·투명성·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훈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 연 1조 보조금 '눈 먼 돈'처럼 썼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5월 정의연의 회계 투명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후 보조금 회수 논란은 4개월 넘게 이어졌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실 조사에서 정의연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2018년 정의연과 통합)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13억4,000만여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국세청 공시에는 5억3,800만원만 신고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검찰이 14일 보조금관리법 위반 등 8개 혐의로 정의연 전 대표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기소 내용에 따르면 윤 의원은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신청해 등록하는 수법으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문화체육관광부·서울시로부터 보조금 3억여원을 부정 수령했다. 또 정대협 직원 2명과 공모해 2014년부터 올해까지 여가부의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과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 지원사업’에 인건비 보조금 신청을 하는 등 7개 사업에서 총 6,500만여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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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여가부는 여성부(여가부 전신)가 2001년 출범한 후 20년 동안 기재부의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지침에 따라 보조금을 집행해왔다. 이는 기재부 장관, 중앙관서의 장, 보조사업자, 간접보조사업자 및 보조금 수령자가 따라야 할 지침으로 여가부 장관은 해당 지침에 따라 보조금을 집행하고 부정수급 등 사후 문제에 대응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지침만으로는 여가부가 정의연 사태에 자체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정대협에 보조금을 지급했던 서울시의 경우 1988년 5월부터 운영 중인 ‘서울특별시 보조금 관리조례’에 따라 처리하면 되지만 여가부에는 자체 지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가부는 보조금 문제를 들여다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힐 뿐 그동안 구체적 절차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해왔다. 여가부 관계자는 “그동안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지침에 따라 보조금을 관리하다가 한부모 가정 예산이 두 배로 급증하는 등 실무지침이 필요하게 돼 훈령을 제정하게 됐다”면서 “정의연 문제도 이 지침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고보조금을 집행하는 주요 부처인 여가부가 자체 규정도 없이 보조금을 집행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집행기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보조금 부정수급 환급 건수 상위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경우 2014년 12월 나온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에 따라 2016년 1월 관리 규정을 마련했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등 주요 지방정부 역시 자체 관리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조금 집행기관들은 보통 조례를 비롯해 관리 규정을 다 갖추고 있다”면서 “법원 판결 등을 통해 부정수급이 밝혀지면 규정에 따라 조치한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뒤늦은 대응을 두고 한 해 1조원의 국고보조금 재정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자체 규정도 없이 보조금을 집행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가부의 올해 총재정(총지출) 1조950억원 가운데 국고보조금 재정은 예산 4,099억원과 기금 5,379억원을 합쳐 9,478억원으로 총재정 대비 86.6%에 달한다.

또 여가부가 매년 국고보조사업 관련 부정수급 적발·환수 건수에서 매년 상위권에 오르면서도 자체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기재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3년간 국고보조사업 관련 부정수급 적발 및 환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여가부는 부처 가운데 2017년 4위(558건), 2018년 3위(771건), 지난해 4위(682건)를 각각 기록했다. 조 의원은 “보조금 부정수급이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고질적 병폐가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는 국고보조사업 전반에 대한 관리방안을 강구하고 부정수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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