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9월22일 동틀 무렵 북해. 독일제국 잠수함 U-9가 영국 함정의 마스트를 찾아냈다. 함장 오토 베디겐 대위는 쾌재를 불렀다. 악천후를 무릅쓰고 모항 헬골란트를 출항한 지 이틀 만에 목표를 찾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쪽에 동형 함정이 두 척 더 있었다. 마침 ‘황천(荒天·폭풍우로 항해가 어려운 상태)’이던 바다도 잠잠해진 상황. 오전7시20분 목표의 500m까지 접근한 U-9는 어뢰 한 발을 쐈다.
영국 해군의 길이 149m, 배수량 1만2,000톤급 장갑 순양함 아부키르함의 선체는 피격과 동시에 20도가량 기울었다. 25분 뒤 배가 전복되고 다시 5분 후에는 가라앉았다. 양쪽에서 아부키르함을 따르던 동급 순양함 두 척은 생존자 구조를 위해 급히 달려왔다. 이때까지도 기뢰에 피격된 것이라고 생각했지 독일군 잠수함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순양함을 뒤따르는 구축함도 항해가 어려운 황천 상황에서 잠수함 기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U-9는 구조 작업에 열중하던 동급 순양함 호그의 측면 350m에서 오전7시50분 두 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300파운드 폭약을 장착한 어뢰 두 발을 맞은 호그함은 10분 뒤 침몰하고 말았다. U-9는 8시20분 다른 영국 순양함인 크레시함에도 1,000m 거리에서 어뢰 두 발을 날렸다. 크레시함도 뒤늦게 U-9의 잠망경을 발견하고 속력을 최대로 끌어올렸으나 이미 늦었다. 어뢰 한 발을 맞아 기동력이 떨어진 크레시함은 옆구리에 500m 떨어진 곳에서 U-9가 8시35분에 쏜 어뢰 한 발을 맞고 15분 뒤 침몰했다.
순식간에 침몰한 크레시급 순양함 세 척의 건조비 합계는 235만파운드. 취역 10년을 맞는 구형이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1,145만달러인 대형 함정 세 척이 건조비 51만달러, 수중배수량 601톤에 불과한 U-9에 속절없이 당했다. 더욱이 U-9는 손상 없이 작전해역을 벗어났다. 독일의 지출은 단가 1만달러 미만의 어뢰 6발이 전부였다. 사상 최고의 잠수함 전과로 손꼽히는 이날의 해전은 경제성으로도 최고 전투로 손꼽힌다.
아부키르함 피격 이후 호그함에 구조됐다가 크레시함에 또 구조되고 최종적으로는 네덜란드 어선에 구조되는, 억세게 운 좋은 생존자도 한 명 있었지만 영국은 이 전투에서 장병 1,459명을 잃었다. 영국 해군경 피셔 제독은 ‘넬슨 제독이 평생 동안 잃은 병력보다 많은 전우를 보냈다’고 한탄했다. 잠수함전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막대한 예산으로 자주 국방력을 건설하려는 한국의 입장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 답은 자명하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