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0년 9월 25일 동틀 무렵, 살라미스. 페르시아 함선 800여 척에 봉쇄된 그리스 도시 연합함대(368척)에서 ‘파이안’(승리의 노래)이 울려 퍼졌다. 45살의 나이에도 전투에 참전한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그리스만의 관습인 파이안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우에게 용기를 공포를 없애주는 외침.’ 오늘날 군가 격인 파이안을 들은 페르시아 군대는 의아하게 여겼다. ‘그리스 함대의 일부가 항복을 위해 대열을 이탈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믿고 귀순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리스 함대는 전의로 똘똘 뭉쳤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첫째, 고대의 해전은 지상전을 선상으로 옮긴 형태로 치러졌다. 해전에서 이겨도 페르시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둘째,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패하고 아테네까지 점령당한 직후여서 공포가 컸다. 영화 ‘300’에서는 스파르타군 300명이 페르시아 백만대군과 싸운 것으로 설정했으나 실제는 6,000명대 10만 명이 싸워 4,000명대 2만 명이라는 전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파죽지세의 페르시아군에 맞선 그리스 23개 도시국가의 입장도 걸핏하면 엇갈렸다. 삼단노선을 보내기로 약속하고는 눈치만 살핀 도시도 있었다. 함대의 절반가량을 책임진 아테네의 리더십과 사령관 데미스토클래스(44세)의 기지로 동맹을 유지했으나 속으로는 도시국가 간 자존심 경쟁을 펼쳤다. 손발도 안 맞고 함선 수도 열세인 그리스 함대는 오전 7시에 시작된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했을까. 세 가지 요인이 손꼽힌다.
첫째, 같은 삼단노선이라도 튼튼하고 성능이 좋았다. 둘째, 운도 따랐다. 바람이 불어 간격이 좁아진 페르시아 함선들을 쉽게 들이박았다. 셋째, 선원들이 우수했다. 전제국가인 페르시아 함장들이 위만 바라보는 동안 그리스 함장들은 난전에서 자율적인 판단을 내렸다. 저녁 무렵, 200여 척을 상실한 페르시아는 도망쳤다. 진짜 승리 요인은 따로 있다. 고위귀족도 말에서 내려 하층 시민과 함께 함선에 올랐다. 귀족일수록 솔선수범했던 정신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뒤엉켜 싸운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병참선을 유지할 수 없게 된 페르시아는 결국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영화 300 시리즈의 과장이 심하지만 테르모필레와 살라미스 전투가 남긴 게 있다. 자유로운 인간이 보다 용감하게 싸운다는 점이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한 최초의 사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