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미국 정부의 추가 가계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택담보대출 채무 불이행에 따른 퇴거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도 소폭 늘어나며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웃도는 등 미국 경제가 다소 느린 속도로 회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물경제와 괴리된 상태로 급등하던 주식시장이 최근 상승분을 반납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추가 부양책이 없다면 경제는 다시 위축될 것이라며 의회의 빠른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추가 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 가계가 마지막 실업수당 등을 사용하면서 일부 미국인들은 집을 잃을 수 있을 정도의 지출 감소를 보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들은 결국 돈을 다 써버려 소득을 줄여야 하고, 어쩌면 소유한 집이나 빌린 집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이것이 바로 추가 조치가 없을 경우의 하방 리스크”라며 “아직 이런 현상이 많이 목격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머지않은 미래에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는 정부의 부양책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빠른 경기회복을 보였지만 이 지원금이 바닥난 상황에서 실업자들은 그간 저축한 돈을 모두 써버려 지출을 줄이고 이는 경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추가 부양책으로 회복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V자’를 꿈꾸던 미국의 경제회복 속도는 다소 주춤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이다. 지난 3월 680만건에 달했던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5월 들어 180만건으로 빠르게 줄었지만 이후 6월 140만~150만건, 7월 110만~140만건, 8월 88만~110만건을 유지했으며 이달 들어서도 줄곧 80만건대에 머물고 있다. 이날 발표된 지난주(9월13∼19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 역시 87만건으로 전주의 86만6,000건은 물론 전문가들의 예상치 84만건도 웃돌았다. 이미 V자 회복은 멀어진 모양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이든 해리스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여전히 밖에 남아 있는 고통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경기회복 속도가 둔화된 것은 추가 부양책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의회는 4월까지 총 2조8,000억달러의 예산안을 처리했지만 이후 추가 예산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 입장차가 커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5월 3조4,000억달러 상당의 추가 예산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 반면 공화당은 7월 1조1,000억달러, 민주당은 이전보다 축소한 2조2,000억달러를 예산안으로 제시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이후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예산안 규모를 기존 안보다 축소하겠다고 공언했고 민주당은 2조2,000억달러가 아니면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추가 부양책 논의는 멈춘 상태다.
다만 이날 민주당이 다시 2조4,000억달러의 부양책을 제시하면서 논의를 재개한 점은 주목할 만한 요소다. 블룸버그통신은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백악관과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협상할 2조4,000억달러의 부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며 이 법안이 다음주 의회에서 통과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이날 상원에 출석해 “지난 며칠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15~20번 통화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케어스 법안(CARES Act)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날 급락했던 주식시장은 소폭 상승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금융위기까지 거론하며 빠른 추가 부양책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NYT는 최근 몇 주 동안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이 정부 지원을 너무 빨리 끊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실수를 반복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위기에서 얻은 교훈은 실업률을 몇 년 동안 끌어올렸고 느리게 내렸다는 것”이라며 “신속하게 행동한다면 우리가 봤던 피해를 완화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