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피격 사건에 대해 서경펠로(자문단)와 전문가들이 ‘9·19남북군사합의’는 파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25일 군사합의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신 센터장은 “이제 군사합의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군사합의를 깬다고 할 필요는 없다”며 “9·19군사합의는 사실상 깨졌다는 사실가치를 인정하고 북한의 위협적인 행위에 대해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군사합의는 100% 사문화된 거라고 본다. 남북군사합의의 기본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건데 (이번 이씨 사건을 보면) 그 정신은 이미 훼손됐다”며 “정부는 이런 문제를 마치 꼭 북한에 물어봐서 답변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 아직도 (북한에) 끌려다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경기대 북한학과 겸임교수)도 “군사합의 체결 이후 북한이 이를 준수하려는 노력과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번 이씨의 사건만 보더라도 정부가 군사합의 파기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근거도 부족한 마당에 월북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정부에 대한 분노만 키운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특히 “군사합의 자체가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지만 지난 2018년 군사합의가 체결된 후에도 북한은 군사행동을 보여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성실히 군사합의를 지켜야 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호열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이 계속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고 이번 이씨의 사건 등을 보더라도 군사합의를 지킨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지금은 정전체제에 입각해서 북한 도발을 억제해야 하고 추후에 다시 기회가 있으면 군사합의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이씨의 피격 사건에서 청와대와 군이 부적절하게 대처했다며 미숙함도 지적했다.
신 대표는 “청와대에서 (이씨에 대해) 방관으로 방향을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미 정보자산의 모든 정보는 청와대로 올라가는데 청와대가 확실한 지침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도 안 된 것 같고 풀리지 않은 의문이 적지 않게 남아 있는데 청와대의 대응이 매우 부적절했다”며 “(이씨를) 방관하고 관련 보고를 (청와대가) 묵살했다면 남북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보는데 그게 자국민 안전보다 우선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신 센터장은 “군과 해경이 정확한 실종 지점을 파악해서 수색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정부의 종합적 위기대응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와 유감 표명은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력연구원 통일센터장은 “북한이 막무가내 집단이지만 자신들에게 뭐가 손해고 뭐가 이익인지 정도는 계산할 줄 안다”며 “북한도 국제사회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김정은도 국제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 있어 사과는 했지만 진정성은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남측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고 여야가 외통위에서 결의안까지 나와서 북한도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마음대로 주무르고 압박할 수 있다. 이런 남측 정부가 대북정책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은 면하도록 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북한이 사과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씨 피격을 계기로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 수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신 대표는 “대북정책이 이대로 흘러가면 우리의 안보 위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북한의 위협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소 등 여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럴 의지가 안 보인다”고 진단했다. 남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북한 짝사랑은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우리만 북을 향해 문을 열어 놓았지 북한은 여전히 문을 닫고 비인도적 행태를 하고 있는데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정욱·김인엽·김혜린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