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북정책 조급증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북핵 수년내 해결될수 없는 문제

종전선언 美설득 서두르지 말고

"비핵화 지체는 南군사력만 증강"

北이 자각하도록 대북정책 펴야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정치는 현실과 이상의 결합이다. 현실의 무게를 강조하다 보면 목표를 잃어버리고 이상의 매력에 빠져들다 보면 현실의 냉엄함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이상주의자들의 잘못은 ‘순진함’에 있고 현실주의자들의 결점은 ‘황폐함’에 있다고 한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인 에드워드 핼릿 카가 한 말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와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우리 내부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현 정부와 진보진영은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고 북한정권이 안보를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비핵화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이 잘못하고 있고 미국을 대북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최대의 압박정책으로 북한정권의 생각을 바꿔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핵문제의 핵심은 핵을 개발한 북한정권의 잘못이고 한미동맹 강화에 기초한 압박정책으로 북한의 잘못을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진영 모두 이상과 현실의 한쪽만을 바라보는 외눈박이 사고의 틀에 갇혀 있다. 진보진영은 평화에 집착하다 보니 북한 핵 개발의 엄중한 현실을 경시하거나 잊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보수진영은 북한 핵무장의 현실에 집착하다 보니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창의적 사고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진보진영은 이상주의의 순진함에 빠졌고 보수진영은 현실주의의 황폐함에 매몰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 핵무장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나갈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현실을 잊어버리면 낭만적 모험주의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상을 잃어버리면 냉전적 대결주의의 늪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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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조급증을 보이고 있다. 곧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일 것이다. 선거 후 미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설지,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게 할지 고민이 클 것이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미북 대화의 길이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도 할 것이다. 또 북한이 협상력 강화를 위해 미국 대선 직후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칫 미북관계와 한반도의 상황이 심지어 지난 2017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다.

정부의 이런 우려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초조함과 조급함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대외정책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한반도 종전선언은 최근의 한반도 정세와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것이 돼버렸다. 이 제안을 실현하기 위해 고위 외교당국자들이 총동원돼 미국 설득에 나선 것도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방해꾼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만 거뒀다.

북한 핵문제는 수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정치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이른바 불가역적인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제관계에 그런 일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공언한 ‘비핵화 목표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하도록 관리해나가야 한다. 대북정책은 이러한 목표에 충실히 연동돼야 한다. 이 연결고리를 놓치면 북한의 늘어나는 요구에 계속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 북한 비핵화의 지체는 우리의 군사력 증강과 한미동맹 강화만을 야기할 뿐이라는 것을 북한 당국이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신중히 지켜나가는 것이 결국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에 이르는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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