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는 우주에서 가장 신기한 현상 중 하나인 ‘블랙홀’의 비밀을 한 꺼풀 더 벗겨낸 미국·영국·독일 과학자 3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수학적으로 블랙홀을 밝히고 우리은하 중심부에 태양 질량의 400만배나 되는 초대형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블랙홀은 빛을 포함해 모든 것을 흡수하는데 중심부에는 현재 알려진 모든 자연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하는 초거대 질량의 천체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영국의 로저 펜로즈(89) 옥스퍼드대 교수, 독일의 라인하르트 겐첼(68) 막스플랑크 천체물리학연구소장(UC버클리 교수), 미국의 앤드리아 게즈(55) UCLA 교수를 ‘2020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게즈 교수는 여성으로는 마리 퀴리(1903년), 마리아 거트루드 메이어(1963년), 도나 스트리클런드(2018년)에 이어 네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블랙홀과 같은 밀도와 질량이 매우 큰 천체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우주에서 가장 낭만적인 현상 중 하나인 블랙홀에 대한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한다”고 설명했다.
펜로즈 교수는 지난 1965년 블랙홀의 존재가 아인슈타인이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의 결과라는 것을 증명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점이 수학적으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후 그는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와 함께 ‘호킹-펜로즈 블랙홀 특이점 정리’를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이 맞다면 우주는 반드시 특이점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블랙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호킹 박사가 살아 있다면 공동수상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겐첼 소장과 게즈 교수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초대질량 블랙홀이 우리은하의 중심에 있는 별들의 궤도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1990년대 초부터 유럽남천문대(ESO)의 천체망원경 등을 활용해 우리은하 중심 궁수자리A에서 태양 질량의 400만배 정도 되는 초대형 블랙홀이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겐첼 소장의 제자인 박수종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별을 관측해 내부에 블랙홀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 연구원은 “상대성 이론이 궁극적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옳은 방법이었다는 중요한 증거”라며 “뉴턴의 중력이론보다 자연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수상자에게는 상금 900만크로나(약 10억9,000만원)가 주어지는데 업적의 절반은 펜로즈 교수에게, 나머지 절반은 겐첼 소장과 게즈 교수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매년 열렸으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다. 대신 자국에서 각각 상을 받는 장면이 온라인으로 중계된다.
앞서 노벨 물리학상은 1901년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을 시작으로 ‘상대성이론’으로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꾼 아인슈타인, 방사능 연구를 선도한 마리 퀴리 등 유명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올해까지 상을 받은 사람은 총 216명이다. 2017년에는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킵 손(이상 미국) 박사가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라이고·LIGO)로 중력파 존재를 확인하며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다.
한편 노벨상 발표는 5일 생리의학상에 이어 오는 12일까지 화학·문학·평화·경제상의 순서로 발표된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2000∼202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연구업적
△2020년: 로저 펜로즈(영국), 라인하르트 겐첼(독일), 앤드리아 게즈(미국)= 블랙홀 연구에 기여
△2019년: 제임스 피블스(미국), 미셸 마요르·디디에 쿠엘로(이상 스위스)= 우주 진화의 비밀을 풀고 우주 속 지구의 위치를 밝히는 데 기여
△2018년: 아서 애슈킨(미국), 제라르 무루(프랑스), 도나 스트리클런드(캐나다)= 레이저 물리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레이저 파동 개발에 기여
△2017년: 라이너 바이스(미국), 배리 배리시(미국), 킵 손(미국)=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라이고·LIGO)로 중력파 존재를 실제로 확인
△2016년: 데이비드 사울레스(영국), 덩컨 M 홀데인(영국), J 마이클 코스털리츠(영국) = 위상(位相)적 상전이와 물질의 위상적 상을 이론적으로 발견
△2015년: 가지타 다카아키(일본) 아서 맥도널드(캐나다)= 중성미자 진동 발견
△2014년: 아카사키 이사무·아마노 히로시(이상 일본) 나카무라 슈지(미국)=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
△2013년: 피터 힉스(영국)·프랑수아 앙글레르(벨기에)= 힉스 입자 존재 예견
△2012년: 세르주 아로슈(프랑스)·데이비드 J. 와인랜드(미국)= 양자 입자 파괴 없이 측정 가능한 방법 발견
△2011년: 사울 펄무터(미국)·브라이언 P. 슈미트(미국·호주)·애덤 G. 리스(미국)= 초신성 연구로 우주의 ‘가속 팽창’ 성질 규명
△2010년: 안드레 가임(네덜란드)·콘스탄틴 노보셀로프(러시아·영국)= 차세대 나노 신소재로 주목받는 2차원 그래핀(graphene) 연구 업적
△2009년: 찰스 K. 가오(高)(영국·미국)= 광섬유의 빛 전달과정 연구로 광통신 기초 마련, 윌러드 S. 보일(캐나다·미국)·조지 E. 스미스(미국) = 디지털영상 촬영에 쓰이는 전하결합소자(CCD) 센서 개발
△2008년: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이상 일본)= 자연계에서 쿼크의 존재를 보여주는 대칭성 깨짐의 기원 발견,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미국) = 아원자물리학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의 메커니즘 발견
△2007년: 알베르 페르(프랑스)·페테르 그륀베르크(독일)= 나노 기술 및 거대자기저항(GMR) 발견에 기여
△2006년: 존 매더·조지 스무트(이상 미국)= 극초단파 우주배경복사의 흑체 형태와 이방성(異方性) 발견, 은하와 별의 기원 연구에 기여
△2005년: 로이 글로버(미국)= 양자 광학이론 이용, 빛의 결맞음 이론 정립 공헌, 존 홀(미국)·테오도어 헨슈(독일)= 레이저 정밀 분광학 개발 기여
△2004년: 데이비드 그로스·데이비드 폴리처·프랭크 윌첵(이상 미국)= 원자핵 내의 강력과 쿼크의 작용 규명
△2003년: 알렉세이 아브리코소프(러시아)·앤서니 레깃(영국)·비탈리 긴즈부르크(러시아)= 양자역학 분야의 초전도와 초유동 현상 연구
△2002년: 레이먼드 데이비스 주니어(미국)·고시바 마사토시(일본)= 우주 중성미자 연구, 리카도 지아코니(미국)= 우주 X선 원천 발견으로 천체물리학에 기여
△2001년: 에릭 코널·칼 위먼(이상 미국)·볼프강 케테르레(독일)=보스-아인쉬타인 응축물로 알려진 새로운 초저온 기체 물질 생성
△2000년: 조레스 알페로프(러시아)·헤르베르트 크뢰머(독일)·잭 킬비(미국)= 현대 정보기술(IT) 개척에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