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도 베를린 당국이 도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철거를 명령했다.
베를린 미테구는 지난 7일(현지시간)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 오는 14일까지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미테구는 자진 철거를 하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을 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코리아협의회에 청구하겠다고 했다.
미테구는 철거의 이유에 대해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문을 설치해 독일과 일본 간의 관계가 긴장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쟁 시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상 설치에 동의했는데, 비문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테구 측은 “미테구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며 “일방적인 공공장소의 도구화를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비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데려갔고, 이런 전쟁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설명이 담겨있다.
미테구청의 철거 공문은 최근 일본 정부가 독일 정부에 베를린 소녀상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나왔다. 소녀상 설치에 대한 보도가 나가자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달 29일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어 일본의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
독일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독 일본대사관은 최근 베를린 당국에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코리아협의회 측은 애초 허가 과정에서 설명문을 제출해달라는 요청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우선 미테구와 대화를 통해 설득할 것”이라며 “기자회견과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리아협의회가 독일에서 위안부 문제 등 전쟁 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공공장소를 도구화했다’는 지적은 가슴 아프다”고 덧붙였다. 코리아협의회는 현지에서 연대해온 50여개 시민단체와 협력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철거를 보류하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신청도 내는 방안도 구상 중인데, 아직 법률 자문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 모금도 시작할 계획이다.
베를린의 소녀상은 지난 7월 미테구청으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아 지난달 말 미테구의 비르켄 거리와 브레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설치됐다. 독일에서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공공장소에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소녀상은 지하철역 인근으로 음식점과 카페가 많은 지역에 위치해 지역 시민의 접근성이 높다. 소녀상의 설치 기한은 1년으로, 심사를 통해 연장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