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글로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마주해야 하는 주요 기업들이 연말을 앞두고 정기인사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화는 이미 예년보다 빠른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고 롯데도 한 달가량 앞당겨 핵심 경영진에 대한 인사를 마무리 지으려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해 선제적 인사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해마다 최대 규모의 인사 폭으로 이목을 끌었던 삼성그룹의 연말 일정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재판이 시작되면서 불투명해졌다. 이달 22일에는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 관련 공판준비기일, 오는 26일에는 지난 1월 이후 중단됐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이 열린다. 사장단을 비롯한 주요 임원 인사는 결국 최종 결재권자인 이 부회장의 판단이 필요한 만큼 재판 일정에 따라 인사 시기나 폭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삼성그룹은 2015년까지 통상 12월 초순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인사가 이듬해 상반기로 미뤄졌다. 이후 2017년과 2018년에는 전 계열사 동시 인사가 아닌 전자와 금융·물산 등 분야별 인사로 나뉘었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말에도 임원 인사가 밀리면서 올해 1월20일에야 인사를 실시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이 부회장이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시기 전에 인사를 단행하거나 아니면 아예 내년 1월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사 시기는 불투명해도 ‘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신상필벌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생활가전(CE),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 사업부에서 임원 승진자가 있지 않겠나”라며 “사업 부문별 성과에 따른 인사가 이뤄지기는 하겠지만 시기나 폭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LG(003550)그룹은 다음달 말께 인사가 유력하다. 다만 LG화학(051910)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분사가 12월1일로 예정된 만큼 다른 계열사와 별개로 인사가 날 수도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사장단 워크숍에서 강조한 ‘포스트 코로나’와 ‘기민한 시장 대응’을 경영에 잘 녹여낼 인사를 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이 최근 임원을 대상으로 정기인사를 위한 면접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사장단 인사가 한 달가량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G그룹 관계자는 “예년과 동일한 시기에 인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과거 12월 말 정기인사를 진행해온 현대자동차는 부사장급까지 아우르는 승진 인사가 예정돼 있다. 앞서 7월 임원인사에서 미래차 사업 위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한 차례 한 만큼 내부에서는 미래 모빌리티 사업과 연구개발(R&D), 해외 마케팅 등 ‘포스트 코로나’를 염두에 둔 인사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다.
SK그룹은 이달 21~23일 열리는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이후 인사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12월 초 인사가 진행됐지만 다소 앞당겨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LG화학과 맞붙은 SK이노베이션(096770)은 이달 말 나오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 결과에 따라 주요 임원의 거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 사업이 모두 부진했던 롯데그룹은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동빈 회장이 귀국하는 대로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해마다 연말 인사를 앞두고 11월께 각 계열사 대표로부터 임원 평가서를 받았지만 올해는 이미 추석 연휴 전에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민·한재영·박한신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