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미국 중공업의 출발, 제철소

1645년, 소거스 제철소 설립

미국 중공업의 뿌리 격인 소거스 제철소. 미국 국가유적으로 보전되고 있다. /위키피디아미국 중공업의 뿌리 격인 소거스 제철소. 미국 국가유적으로 보전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1645년 10월15일, 매사추세츠 법원이 존 윈스럽 2세(당시 39세)에게 북미 식민지에서의 21년간 철 생산 독점권을 내줬다. 허가는 어렵지 않게 나왔다. 윈스럽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존 윈스럽 1세는 북미 식민지를 향한 2차 이주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설립을 주도한 인물. 초대 총독을 비롯해 열두 번이나 지사직을 맡았다.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언덕 위의 도시(a city upon a hill)’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존 윈스럽 1세는 ‘신대륙에 영국인들도 우러러볼 만한 하나님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주력한 반면 아들 윈스럽 2세는 경제 분야에 눈을 돌렸다. 아버지처럼 변호사 출신인 윈스럽 2세는 매사추세츠 부지사를 거쳐 코네티컷 지사로 일하며 아메리카의 제조업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소금을 생산하는 제염소 건설에 이어 그는 제철소 설립에 나섰다. 문제는 돈. 대규모 시설을 건설하는 재원이 식민지에는 없었다. 결국 런던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철 생산에 필수인 숯을 만들 산림자원이 영국은 고갈돼가는 반면 아메리카는 무궁무진하다는 설명이 런던에서 먹혔다. 최고 연봉자의 연간 수입이 90파운드였던 시절, 그는 1만5,000파운드를 모았다. ‘언더테이커스 제철회사’를 설립한 그는 보스턴 남쪽에 제철소를 세웠으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철광석 공급이 달리고 수력발전기를 돌릴 수량도 적었던 탓이다. 윈스럽 2세는 1646년 런던에서 전문가를 초빙, 보스턴 북쪽 소거스 강가에 제철소를 하나 더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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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최초의 중공업인 소거스 제철소는 매주 8,000ℓ의 금속을 다뤘다. 보다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투자자 간 알력으로 제철소는 1676년 문을 닫고 말았지만 독점이 풀리고 비슷한 투자가 잇따랐다. 독립전쟁 직전인 18세기 중반 북미 식민지는 세계 선철 공급의 7분의1을 토해냈다. 윈스럽이 뿌린 미국 제조업은 초고속 성장하며 20세기 초반에는 세계 1위로 뛰어올랐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총생산(W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요즘은 24%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의 수준을 유지하는 분야는 딱 하나, 국방비뿐이다. 전 세계 국방예산의 40%를 쓴다. 국지전이라도 터지면 이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뛰는 경우도 많다. 경쟁력 약화로 경제의 힘은 떨어지는데 국방비 등 고정지출이 많으니 부채만 쌓여간다. 윈스럽 부자가 꿈꾼 언덕 위의 도시는 27조달러라는 부채 위에 떠 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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