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엔 끝이 있고, 그 끝에서 새로운 시작도 나오는 법이다. 인간 세상에나 던질 법한 철학적인 화두 같지만,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무수한 동식물에도 생명 곁에 자리한 죽음, 그 죽음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이야기는 똑같이 적용된다.
신간 ‘생명 곁에 앉아 있는 죽음’은 바다, 강, 육지, 하늘에 서식하는 32종 생물들의 생활 방식과 진화 과정, 번식과 죽음을 통해 산다는 것 혹은 죽는다는 것에 대해 통찰한다.
집게벌레 어미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40~80여 일에 걸쳐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제 새끼를 지킨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부화하는 행복한 그 날이 어미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먹잇감을 사냥할 수 없는 새끼를 위해 어미는 기꺼이 제 몸을 내놓는다. 사라진 어미의 몸뚱어리는 새끼들의 피와 살이 된다. 알에서 깬 새끼들이 돌 밑으로 기어 나와 제 갈 길을 갈 때, 계절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번식’이란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한 죽음의 방식이다. 고작 일주일 울어대며 날기 위해 무려 7년을 땅에서 굼벵이로 지내는 매미,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동종 포식을 당하면서도 번식을 위해 기꺼이 짝짓기하는 사마귀 수컷, 알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죽음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모습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도 곱씹게 된다. 세밀하면서도 문학적인 표현, 원작의 감성을 제대로 살린 번역이 돋보인다. 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