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판사님, '에임 핵'이 게임 승패에 영향 안 준다고요?[오지현의 하드캐리]

오버워치 저격수 캐릭터 ‘위도우메이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오버워치 저격수 캐릭터 ‘위도우메이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배틀그라운드나 오버워치 같은 FPS(1인칭 슈팅게임)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아마 이 소식에 분노하셨을 것 같습니다. 불법 프로그램인 오버워치 ‘에임 핵’을 판매한 판매자의 재판과정에서 ‘에임 핵’이 ‘악성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 말입니다. 정말 판사가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인지, 하급심부터 최종심까지의 판결문을 구해 분석해봤습니다.

오지현의하드캐리


사건 개요는 이렇습니다. 피고인 박모씨는 2016년 7월 오버워치 게임상에서 상대를 자동조준하는 기능을 가진 ‘AIM(에임) 도우미’라는 프로그램을 4만원을 받고 판매합니다. 핵 프로그램(해킹 프로그램) 중에서도 슈팅게임 장르에서 이용돼 ‘에임(조준)’ 적중률을 100%로 높여주는, 일명 ‘에임 핵’입니다. 범행은 이듬해까지 이어졌고, 박씨는 총 3,612회에 걸쳐 이를 판매해 1억9,923만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FPS 유저라면 치를 떠는 게 바로 이 에임 핵입니다. ‘히트스캔(버튼을 누르는 즉시 피격판정이 일어나는 방식)’ 스킬을 가진 원거리 스나이퍼가 에임 핵을 사용한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대응할 방도가 없습니다. ‘헤드샷(머리를 맞춤)’으로 즉사하게 됩니다. 핵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술이 진화하면서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유저인지, 아니면 핵을 쓴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양상이 교묘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핵 유저가 활개치는데 운영사가 이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게임 운영 자체가 망가지게 되겠죠. 잘 나가는 게임을 망하게 만드는 범인으로도 꼽힙니다. 이런 에임 핵이 정말 대법원에서 ‘면죄부’를 받은 걸까요?

FPS 게임 배틀그라운드. /펍지주식회사FPS 게임 배틀그라운드. /펍지주식회사


박씨는 정보통신망법과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2가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부분은 “게임물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업자가 승인하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포·제작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 관련입니다.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1심 재판부에서도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에임 핵 프로그램의 합법성을 인정하거나 이를 유통해도 된다고 허용한 판결은 결코 아닌 거죠.

문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부분인데요.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 즉, ‘악성 프로그램’이라 한다)을 전달 또는 유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에 박씨의 행위가 해당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흔히 생각하는 ‘나쁜’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겁니다. 처벌조항은 게임산업진흥법보다 더 강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대법원


악성 프로그램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은 1심과 2심에서 갈렸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프로그램으로 게임 이용자가 좀 더 쉽게 상대방을 저격할 수 있게 되기는 하나 게임 자체의 승패를 뒤집기에 불가능한 정도로 만드는 것은 아니어서, 그러한 사정만으로 정보통신시스템이 예정하고 있는 기능의 운용을 방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메모리나 게임 코드 자체에 손상을 가하거나, 운영 서버를 과부하시켜 정보통신시스템에 장애를 발생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이머 입장에서 “승패를 뒤집기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는 표현에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이는 망법 관련 판단 부분입니다.


반면 2심은 법을 보다 폭넓게 해석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에서 단시간 내에 상대팀 캐릭터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정확하게 조준·발사하는 것이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기본 요소’라고 봤습니다. 자동 탐색과 자동 조준을 가능케 하는 에임 핵은 게임의 운용을 현저히 해치고 게임 자체에 대한 이용자들의 흥미와 경쟁심을 잃게 해 ‘정상적인 운영’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에임 핵은 단순한 매크로 프로그램 범주를 넘어선 ‘악성 프로그램’이라는 게 2심 재판부 결론입니다.



/이미지투데이/이미지투데이


이 판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적 지식이 하나 필요합니다. 바로 ‘상상적 경합’이라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 죄목을 구성할 때, 이들이 경합해 가장 처벌 수위가 높은 법 조항이 적용되는 것을 뜻합니다.

1심 재판부는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혐의만을 인정했으나, 2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까지 양형에 반영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단이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습니다. 프로그램이 서버를 점거해 다른 이용자들의 서버 접속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트래픽 장애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섭니다.

오버워치 유튜버 ‘반스쿼드’는 프로게이머를 능가하는 뛰어난 조준 실력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핵 유저라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유튜브 캡쳐오버워치 유튜버 ‘반스쿼드’는 프로게이머를 능가하는 뛰어난 조준 실력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핵 유저라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유튜브 캡쳐


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는 판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데요. 컴퓨터 바이러스, 랜섬웨어, 스파이웨어 같은 각종 멀웨어나 논리폭탄, 메일폭탄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단순히 트래픽을 증가시키는 매크로 프로그램의 경우 컴퓨터를 이용한 업무방해로 처벌되지만, 이 역시 악성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판례도 있습니다.

결국 원심판결이 전부 파기된 것은 망법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는 이유에서지, 에임 핵이 불법 프로그램이라는 데는 재판부 간의 어떠한 의견차이도 없었던 거죠.

일부 언론에서는 이날 판결로 “에임 핵이 누명을 벗었다”는 식의 표현을 헤드라인에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이 역시 판결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물관리위원회


‘에임 핵’과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경찰과 공조를 통해 게임 질서를 해치는 불법 핵 프로그램, 대리게임 판매 업체 검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핵 프로그램 판매로 시정요청이나 권고가 이뤄진 건수는 2016년 289건에서 700건(2017년)→1,112건(2018년)→3,568건(2019년)으로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올해 1·4분기에도 1,118개 웹사이트에 대해 행정제재가 이뤄졌고 그중 4곳에 대해 수사의뢰가 이뤄졌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핵 같은 불법 프로그램으로 인한 연간 게임사 피해액은 무려 2조4,323억원에 달합니다.

결론입니다. 에임 핵은 ‘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을 뿐, ‘악성(惡性) 프로그램’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불법 핵, 만들지도 팔지도 사지도 맙시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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