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노사갈등이 운송·숙박·여행업 등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측은 경영난에 따른 구조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해고에 민감한 노동조합은 회사를 상대로 자구책을 찾으라고 압박하거나 쟁의를 위해 양대 노총 등 상급단체를 찾고 있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올해 말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노사갈등이 보다 첨예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발(發) 고용 쇼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노동개혁이라는 근본 해법을 찾기보다는 일시적인 고용유지를 위해 ‘돈 풀기’라는 임시처방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버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항버스 회사들은 서울시에 준공영제를 한시적으로 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준공영제는 시내버스 회사의 적자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으로 보전하는 제도다. 그동안 흑자 기조였던 공항버스 업계는 지자체의 재정보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경영난이 가중됐다. 일시적인 준공영제로 적자를 보전해주면 경영 상태가 호전된 후 갚겠다는 입장이다. 공항버스업계는 지난 7월에도 서울시의 시내버스 기사 공개채용에 공항버스 기사를 채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공항버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 열리면서 기사를 대규모 채용했다”며 “버스가 250대인데 100대를 운영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계약기간인 1년인 촉탁직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 30~40명 정도를 정리하고 있다”며 “정규직도 정리해고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조트와 카지노 등을 운영하는 인천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지난 7월 리조트 직원들을 상대로 무급휴직·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호텔 관계자는 “영업을 하지 않는 사업장이 많고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무급휴직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랜드도 킴스클럽의 5개 지점을 분할하고 신설법인으로 외주화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경영의 효율화를 위한 것으로 구조조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랜드 노조는 영업실적이 저조한 매장을 중심으로 외주화를 확대할 수 있다고 보고 반발하고 있다.
존폐기로에 놓인 이스타항공도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2007년 설립된 저가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은 노조의 국회 앞 농성 투쟁 등 반대에도 불구하고 14일 직원 615명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던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 여파로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마저 무산되자 큰 폭의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박이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 조종사 지부장은 14일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농성 전 박 지부장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이스타항공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경우 해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원금도 신청하지 않고 있다”며 “고용보험료 5억원가량을 체납하는 등 회사가 법 위반을 하고 있지만 나서야 할 정부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스타항공은 재매각을 위해 정리해고 등을 통한 인력조정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항공 업계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이스타항공 매각이 실현될지는 당분간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노총 “해고는 살인” 대대적 투쟁 나서나
‘위메프 노조’도 민노총 가입
자동차노련 등도 대응 태세
양노총 “자구노력 지켜볼 것”
◇상급단체 찾는 노조…노동계 “자구노력 다했는지 지켜볼 것”=구조조정 위기가 다가오면서 노동계도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위메프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돼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화섬노조 관계자는 “이전부터 많이 제기됐던 고용불안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위메프가 e커머스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연극·공연 등 티켓 예매 매출이 폭락하면서 노사갈등에 기름을 부었다고 보고 있다.
노총도 피부로 다가오는 구조조정에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2일 사업장과 업종별로 해고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노총 차원에서 조직적 대응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주장하며 한시적 해고 금지를 국가정책으로 분명히 설정하고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제도·재정 지원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달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의 유급휴업수당 보전비율이 90%에서 67%로 하향 조정되는 등 ‘정부가 책임지는 고용’도 어느 시점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한국노총도 버스 기사 중심의 산별 연맹인 자동차노련을 중심으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자동차노련은 8월 충남 버스사업조합이 시외버스 5개사 정리해고 계획을 노조에 전달하자 “자구노력부터 다했는지 보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자동차노련 관계자는 “구조조정 위기는 충남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항버스·시외버스 등 코로나19로 영향을 받는 기사를 추리면 약 1만5,000명인데 이들의 고용안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고용안정’에 방점 찍었지만…“언제까지 재정만 풀고 있나”=정부의 고용정책은 ‘고용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처럼 회사가 휴업할 경우 휴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되 지급비용의 일부를 재정(고용보험기금)으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고용노동부는 휴업수당(평균임금의 70%)의 보전비율을 67%에서 2월 75%, 4월 90%로 인상했고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기간도 180일에서 240일로 연장했다. 240일이 끝나면 무급휴직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평균임금의 50%를 연말까지 보전한 후 내년 1월 다시 고용유지지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의 고용정책은 고용유지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일시 해고를 용인한다면 ‘해고→채용’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가계에 미치는 타격도 크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코로나19발 고용위기가 8개월 가까이 이어질 정도로 장기화하면서 ‘언제까지 재정으로 고용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본예산에서 351억원이 편성됐지만 4차 추경을 거치며 2조6,826억원으로 증가했다. 내년 예산도 1조1,914억원에 달한다.
/변재현·방진혁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