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을지OB베어’ 문제는 단순히 건물주와 임차인의 문제가 아니라 작은 가게마저 자본의 힘이 작용하는 구조에 관한 문제이자 소상공인들이 살려 놓은 상권이 유명해지면 어김없이 임대료가 올라 떠나야 하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현상입니다.”
최수영 을지OB베어 사장은 20일 서울경제에 “언제 강제 집행이 들어와 나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을지OB베어는 지난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가 과도하게 높은 자영업자 비중과 빈번한 창· 폐업 등 ‘다산다사’의 악순환 구조 속에서 지속성장의 가치를 실현하는 소상공인 성공모델을 확산하고자 시작한 ‘백년가게’에 오프집으로는 처음으로 선정됐다. 또 1980년 개업한 을지OB베어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8년 9월 초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고 지난 10월 15일 대법원에서 기각 결정이 나 가게를 비워 줘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을지OB베어와 비슷한 오프집인 ‘만선’이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만 8개의 점포를 내면서다. 만선은 을지OB베어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오픈을 한 호프집이지만 6년 전 주인이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면서 점포를 8개까지 확대한 것이다.
건물주가 퇴거를 요청하면 이제 을지OB베어는 사라지게 된다. 이에 대해 최 사장은 “가게를 지키고 싶은 주인의 욕심이 아닌 추억과 문화를 지키고 싶은 의지로 봐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선이 건물주에 제시한 조건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맞춰 주겠다고도 했지만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을지OB베어는 1980년 창업 당시 모습 그대로다. 6평 짜리 점포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천장을 수리한 게 전부일 만큼 40년 이상 된 노포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이유였던 고추장 소스와 맥주의 맛 역시 그대로이며, 가격 역시 노가리는 몇 년 전 가격 그대로 1,000원이다. 최 사장은 “백년가게로 선정된 주요 이유는 고추장이었다. 지금이야 매운 것이 인기고 흔하지만 개업 당시까지 만해도 이렇게 매운 건 없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며 “맥주도 급속 냉각이 아닌 맥주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냉장숙성을 한다”고 설명했다.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만큼 물가가 올랐는데도 노가리 1,000원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가리 원가는 이보다 조금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는 창업주이자 최 사장의 장인인 강효근 씨의 고집 때문이다. “올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노라기 골목이 문화유산이 됐고 백년가게도 됐다. 가격 좀 올려서 500원 더 남기면 뭐하냐는 창업주의 반대가 있었다. 서민의 술친구로 남고 싶다는 것이다. 옛날에 노가리 100원에 맥주 380원, 500원 받으면 20원 거스름돈 줄 때부터 왔던 손님들과의 추억도 있다고 하시더라.”
얼마 전부터는 11시까지 영업을 하지만 을지OB베어는 원래 10시면 어김 없이 문을 닫았다. 다른 가게가 1~2시까지 혹은 새벽까지 문을 열어도 10시면 가게를 닫았다. 이 역시 창업주의 고집 때문이다. 최 사장은 “1시간 더 맥주 마시느니 그 돈으로 과일이나 먹을 거 사서 가족들과 나눠 먹으라는 의미로 영업을 딱 10시까지만 했다”며 “그런데 손님들이 10시는 너무 이르다는 요청이 있어서 11시까지 장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40년 된 노포에는 유명한 단골 손님도 많다. ‘별들의 고향’의 이장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정진영, 김호진 등이 단골손님이다. “충무로 옆이다 보니 감독 배우들이 많이 찾았다. 유명한 사람들이 와도 불편해 할까봐 아는 척도 안 하고 편하게 대해주니 많이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