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청년인 척 폼을 잡고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저 깊숙한 곳에 질투심을 숨겨두고 아주 가끔 한번씩 꺼내보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한 대학 백일장 예선에 통과하자 보내준 수상작품집에서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글을 보고나서부터였다.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압도적인 필력에 아주 잠깐이나마 꿈꿨던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사실 따로 밥벌이 할 특출난 재능도 없었다. 직업군인 당시 장기복무를 하라는 제의를 받고 진짜 잠깐 고민하기도 했으나 결국 작은 언론사에 입사했다. 그렇게 다들 말리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그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활자가 주는 스트레스에 괴로워하고 있다.
스물아홉 박준영(김민재)을 보며 내심 부러웠다. 초등학생 시절 2년 동안 피아노를 배워도 체르니를 떼지 못했던 슬픈(?) 경험은 음악 천재를 볼 때마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초반만 해도 천재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붙는 그에게 개인적인 고통은 잠시 스쳐가는 성장통처럼 느껴졌다.
물론 드라마고, 외적 시선일 뿐이다. 사람에 둘러싸였으나 사람이 필요한, 그에게 스물아홉은 과거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가정환경과 경후문화재단에 대한 부채의식, 그로 인한 이정경(박지현)과의 관계 모두 쉽게 풀리지 않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두루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에게 오늘 연주를 두고 “다른 사람 말고 준영씨 마음엔 들었냐”고 묻는 채송아(박은빈)는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노크처럼 따스하게 다가왔다.
스물아홉 채송아의 선택을 보며 수년 전 비슷한 선택을 하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 정리하고 환상의 섬으로 떠나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꿈은 준비 부족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삐걱였다. 작가가 되고 싶어도, 좋은 기자가 되고 싶어도 너무 잘 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른 분야는 더 많았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학원에 오라며 조교로 부려먹고, 편을 갈라 서로의 자존심과 잇속만 챙기려는 어른들의 틈바구니. 음악을 점수와 등수로 표현하는 세상에서 돈과 빽이 있거나, 아니면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천재가 될 수 없는 범재였던 채송아는 자신의 끝을 확실하게 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 그녀의 손을 잡아준건 박준영이었다.
채송아와 박준영의 졸업공연을 위해 지금껏 달려왔나 싶었다. 그녀의 마지막 연주는 아름다웠고, 그는 드디어 브람스의 그림자를 벗겨냈다. 긴 짝사랑을 끝내고 악기를 떠나보낸 채송아는 새로운 삶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사랑. 지독한 사춘기 짝사랑을 끝내고 서로 ‘상처받고 더 상처받더라도 계속 사랑하리라는 것’을 받아들인 이들의 얼굴은 밝다. 무척이나.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님’께 건넨 음반도 하나 더 늘어난다. ‘사랑하는 송아에게’ 브람스의 음악으로. 그렇게 이들의 스물아홉 겨울이 지나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판타지다. 순수 로맨스 판타지. 14년 전 출간된 소설 ‘그림자 밟기’ 속 순수했던 송아와 선재는 훌쩍 시간이 흘러 드라마로 살아나며 성장을 입었다. 때로는 내려놓고, 때로는 드러내고, 서로 조금씩 나아가며 성장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는 느려도 답답해도 바로 그 맛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14년간 속에 담아낸 이야기들을 공책에 꾹꾹 눌러쓴 듯한 작가의 섬세함과 이를 이해한 연출의 미학, 배우들의 깊은 감성은 자극에 지친 사람들을 편안하게 감싸 안은 듯 했다.
사랑하는 바이올린을 내려놓아야 하는 채송아와 같은 이들이 어디 하나둘일까. 드라마에 위로받고 뭉클했지만, 다음날 눈 뜨면 또다시 현실과 실전과 마주해야 하는게 또 사는 것 아닌가. 아주 오래 전 이런 고민을 국어선생님께 털어놨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하셨다.
“야 하다하다 하다보면 뭐라도 돼 있지 않겠냐”고.
하루하루 변함없이 살겠지만, 지치고 내려놓고 싶고 외로우면 한번씩 채송아와 박준영이 함께한 마지막 연주를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그런 따스함으로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