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 대한 제재 정책이 중요하지, 가격은 차순위의 문제”라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가격을 억제하지 말아야 한다.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면서 “가격 자체를 억제하려 하면 시장이 왜곡된다. 인간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종부세를 제재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면 완화하는 게 맞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출 규제와 종부세·재산세 등 보유세 인상 등을 통해 집값 안정화를 시도한 정부 여당과 다른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는 스스로를 “좌파도 우파도 아닌, 좋은 정책은 골라 쓰는 실용주의자”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 지사는 주요 현안에 대해 정부 여당이 보여준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의견도 거침없이 내놓았다. 그는 “(부동산) 가격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가격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자신이 선호하는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을 합리적인 측면에서 최대한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노동개혁과 관련해 ‘노동운동도 달라져야 한다’는 소신을 드러냈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일부 대기업 노조도 개혁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 고용환경이 좀처럼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일자리 창출 과제는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시장의 역할 강화로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는 “시장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와 지자체의 임무”라며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려면 공공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는 일자리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의 일부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기본소득, 데이터세-탄소세로 재원 마련해야
기본소득은 2022년 대선을 앞둔 이 지사의 대표 공약으로 꼽힌다. 그는 기술 혁신으로 공급역량은 거의 무한대로 커졌지만, 구조적인 수요 축소와 이에 따른 소비절벽으로 수요·공급 균형이 무너져 경기침체가 일상이 됐다고 진단한다. 이런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단순 복지정책의 성격을 넘어 만성부족인 수요를 보완해 시장경제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핵심 경제정책이라는 신념을 드러냈다.
이 지사는 “거대 동영상 플랫폼 등이 남의 데이터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고 있지만 데이터 주권은 전혀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며 “데이터 주권은 개인에게 있다. 이들은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인 만큼 데이터세(국민이 생산하는 데이터로 만든 이익에 과세)를 기업들에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스위스 사례를 거론하면서 환경세를 비롯해 탄소세 등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이 지사는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도 등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직무와 업종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창의적인 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가령 연구직과 같은 특정 직무나 직업은 한번 몰입할 때 24~48시간 집중할 수 있어야 된다”며 “무작정 근로자들에게 ‘하루에 무조건 8시간만 일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다. 이런 행위는 전형적으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경우로 예외적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지사는 서울경제와의 특별 인터뷰를 통해 일부 대기업 노조들의 이기주의를 비판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유력 대선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이 지사는 지난 7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으며 기사회생했다. 특히 16일 파기환송심에서도 무죄를 받으며 대권가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역시 어느새 여권 내 부동의 1위를 유지했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나란히 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경쟁에서 독주를 해왔다. 특히 4월 기준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40%까지 돌파하며 당시 2위였던 이 지사(14.4%)를 큰 폭으로 따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 후보는 주요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팽팽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지사가 오히려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적지 않다. 16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이 대표를 3%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7월 대법원 판결 이후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3달 연속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스스로를 좌파도 우파도 아닌 ‘실용주의자’라고 소개한 그는 차기 대선에서도 ‘이재명식 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넌지시 내비쳤다. /대담=김상용부장 kimi@sedaily.com
-이 지사와 가까운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를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재명표 실용주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나.
△정치는 국민을 대리하는 것이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아주 좁게 얘기하면 먹고 사는 문제를 국민을 대신해 해결하는 게 정치다. 즉 정치인은 국민을 대리하는 사람이고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된다. 따라서 정치인이 주체가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정치는 당연히 실용주의적이어야 한다. 또 국민의 삶을 존중하는 게 의무이고 본질이기에 실용주의자라기보다는 실용적이어야 한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존중해야 하고 실용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해달라.
△부동산 문제에 한정해 얘기할 건 아닌 것 같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게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욕망의 극대화를 위한 인간들의 노력을 체계화하는 거다. 인간은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지 않나. 우리는 국민들의 자기 욕망을 부정하면 안되고 도덕적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주택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자신의 삶의 만족을 위해서 특정한 위치에 특별한 대가를 치르겠다면 그건 존중해줘야 된다.
"'종부세' 말고 '국토보유세' 강화해야"
△종부세를 제재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완화하는 게 맞다. 다만 정당한 과세와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토지·주택에 대한 세금이 너무 약하다. 그래서 국토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이다. (정치인은) 국민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정부가 주택 소유자라면 누구나 죄인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정부가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집값이 높으니 이 가격을 떨어뜨리겠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과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공정하게 부담을 부과하고 그 결과를 우리가 함께 나누자’고 제안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정부가 국민들이 마치 잘못했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국민들을 억압하고 세금을 걷어가려 하면 조세저항만 일어난다.
-그렇다면 노동 내 차별,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노동계 내부의 이기주의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모든 노동자가 단결하는 게 아니고 우리만 단결하자고 하는 것이 (현재) 노동운동의 이기주의다. 특히 일부 대기업노조가 하청업체의 노조를 배척하는 행위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타파해야 될, 없어져야 할 나쁜 조직문화다.
-지금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일자리 문제다. 현 정부 역시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다.
△정치권이나 정부가 진실에 대해 정직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들이 활동해 시장에서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직접 일자리를 만들려면 결국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것인데, 이건 일자리가 아니고 복지 정책의 일부일 뿐이다. 정부가 경제 부문에서 해야 할 역할을 시장 안에서 기업가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고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재정 확대에 대한 소신이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최근 재정준칙을 정했는데, 정부 기조와 엇박자 우려가 있다.
△지금은 정부 역할을 확대할 시점이다.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이 발휘되면 좋지만 부작용이 심해지면 교정을 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는 안퍼줘서 문제인 나라다. 아주 저열하게 이야기하면, 국가의 가계지원 수준이 너무 낮다. 가계부채율이 왜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일까. 정부가 조세나 재정을 통해 소득지원을 하는데 전세계에서 제일 낮다. 국가 부채와 개인부채 중 무엇이 더 나쁠까. 국가부채는 위험하지 않다. 대외부채가 문제인 것이다. 현재 국가 대신 개인이 빚을 떠안은 꼴이다.
-그렇다면 증세가 필요한 것 아닌가.
△기존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는 물론 증세해야 한다. 미국은 대공황을 이겨내면서 70~80년대까지 최고의 성장기를 구가했는데, 정책의 핵심은 정부의 개입이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이 91%까지 갔다. 이제는 어느덧 20% 전후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결국 어느 정책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글로벌 경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외여건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국제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증세를 하면 된다. 원칙은 모든 법인과 개인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어야 한다. /정리=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