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6년 국내 최초 정부출연연구소이자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출발점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탄생했다. ‘경제발전의 핵심은 과학기술에 있다’고 판단한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 덕분이었다. 이후 KIST는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철강과 조선·반도체 등 기술개발의 밑바탕이 됐다. 1967년에 정부는 과학기술처를 출범시켰고 1972년 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해 기업에 대한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포항제철과 고리원전 1호기 등으로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 산업을 발판 삼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변변한 자원 하나 없던 우리나라에 과학기술은 미래먹거리를 보장하는 핵심 성장동력이었고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기업을 키우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온 것이다.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올 5월에 한국의 과학기술계를 집중 조명하는 내용을 특집기사로 다뤘다. 네이처는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이 뒷받침하는 하향식 R&D 정책이 혁신적 연구성과를 이끄는 동력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혹자는 이와 같은 정책이 연구자 중심의 자율적인 연구환경과는 배치된다고 지적하지만 정부와 학계·산업계 사이의 강한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과 함께 지역별 혁신센터 등을 설립해 대학과 연구시설·생산 인프라를 연계한 산학연관 R&D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이 토대 위에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하는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이 태어났다고도 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국가는 과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면에서 선진국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최근 노벨과학상 수상 경향이 기초연구 성과에 그치지 않고 산업화와 활용성 분야로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는 만큼, R&D는 연구성과를 이끌어 산업화와 경제혁신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벤처기업을 운영한 과학기술인으로서 필자 역시 학문이 응용을 통해 산업에 적용되고 경제와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SCI 논문 실적에만 올인하는 연구평가 시스템은 비실용적이다. 아무리 대학과 시설에서 연구에 매진해 논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실제 산업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이 기술은 숨을 쉴 수 없다.
필자가 2003년 산학협력 벤처기업을 창업한 것도 기술의 실용화, 부가가치 및 일자리 창출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제자들이 취득한 위성정보 응용기술은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실제 국토관리 업무에 활용돼야 하는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이 한정적이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서울포럼에 참석한 페레츠 라비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총장은 “사업화 없는 R&D는 허상”이라고 했다. 내년 정부 R&D 예산은 27조원으로 늘어난다. 이제 그 예산을 어떻게 하면 적절히 잘 소화해 국가 역량 제고와 국민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갈지 철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