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7일 3·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1.9% 성장했다고 발표하면서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경제 회복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은은 “V자 반등으로 보기 어렵고 기저효과가 일부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한 반면 홍남기 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정상화를 위한 회복궤도에 진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한은은 올해 3·4분기 실질 GDP가 전 분기 대비 1.9%(8조6,542억원) 증가한 456조8,635억원(속보치)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1·4분기(2.0%) 이후 1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다만 전년동기 기준으로는 -1.3% 성장에 그쳤다. 위기에서 한국 경제를 구한 것은 역시 수출이었다. 2·4분기(-16.1%) 56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던 수출은 3·4분기에 전기 대비 15.6% 늘면서 크게 회복됐다. 9월 들어 반도체(11.8%)·자동차(23.2%)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이에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2·4분기 -4.1%포인트에서 3·4분기 3.7%포인트로 증가 전환했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이날 3·4분기 실질 GDP 발표 직후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2·4분기에 바닥은 찍었지만 V자 반등으로 보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국내외 기관에서 예측한 1.3~1.4%보다 높은 성장률에도 V자 반등이라고 낙관할 만큼의 회복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은이 지난해 1·4분기 계정조정금액 기준 GDP를 1로 놓고 추산한 결과 올해 3·4분기 GDP는 1.001로 사실상 같은 수준이다. 올해 3·4분기 GDP는 456조8,635억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해 4·4분기 GDP(468조8,143억원)에도 못 미친다. GDP 이전부터 그려오던 성장 추세선은 크게 밑돈다. 박 국장은 “V자 반등은 성장 추세선과 비교해 급격히 올라가는지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3·4분기 성장률은 사실상 기저효과에서 비롯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4분기는 세계 각국이 봉쇄조치를 취하면서 수출이 5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후 봉쇄조치가 풀리고 수요가 되살아나며 수출이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플러스 성장이 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재확산과 기상악화는 성장률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8월 중순 이후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민간소비는 0.1% 감소세를 보였다. 사상 최장 지속된 장마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로 건설투자도 7.8% 줄었다. 한은은 코로나19 재확산이 0.4~0.5%포인트, 기상여건이 0.1~0.2%포인트씩 각각 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 재확산만 없었어도 2% 중반대 성장이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은은 8월 내놓은 연간 성장률 전망치(-1.3%)에 대해서는 상향 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연간 전망치 달성을 위해서는 오는 4·4분기 성장률이 0.0~0.4%를 기록해야 한다. 당초 연간 성장률이 -1.3%가 되려면 3·4분기와 4·4분기에 각각 1%대 중반대 성장을 해야 할 것으로 봤는데 3·4분기에 1.9%로 높은 수치가 나온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등 리스크 요인이 있지만 이를 보수적으로 고려하더라도 조사국 전망치 범위 안에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경기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3·4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은 맞지만 반도체·자동차 수출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라고 봐야 한다”며 “경기가 회복 궤도에 올랐다고 보려면 소비가 되살아나고 고용이 회복되면서 선순환이 시작돼야 하는데 아직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