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11월 12일 밤, 미국과 일본의 함대가 남태평양 과달카날 섬 북쪽 해상에서 마주쳤다. 공세에 나선 일본의 목표는 두 가지. 보급과 폭격에 있었다. 섬의 대부분을 차지한 미군이 운용하는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 폭격해 활주로를 못쓰게 만들고 병력과 물자를 추가 투입해 과달카날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비행장을 되찾을 심산이었다. 전력은 방어 입장인 미군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예봉을 꺾었지만 대형 함정은 여전히 일본이 많았다. 더욱이 보름 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공모함 호넷이 침몰하고 엔터프라이즈는 대파된 상태. 일본은 엔터프라이즈를 해치웠다고 확신했다. 남태평양의 제해권을 거머쥔 일본은 미군에서 유일하게 항공 전력을 운영하는 핸더슨 비행장을 더더욱 눈엣가시로 여겼다. 전함을 포함한 일본 해군의 남하에 놀란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과달카날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으나 문제는 시간.
미군의 증원병력이 도착하려면 한 달 이상 걸렸지만 일본군은 과달카날의 코앞에 왔다. 결국 13일 새벽 약세인 미 해군은 레이더로 적을 먼저 발견하고도 머뭇거리고 함대 전체의 침로를 유지하지 못해 난전 상황에 빠졌다. 첫 교전 결과는 미군의 완패. 순양함 4척이 대파되고 구축함 4척이 침몰했다. 일본은 전함 1척이 대파되고 구축함 2척을 잃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물러났다. 미 해군 구축함 1척이 일본 해군의 기함에 접근해 대공포로 함교를 쓸어버리자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우세했던 전황은 이튿날부터 바뀌었다. 항모 엔터프라이즈가 승강기 수리 중인 상태에서 급히 달려와 대파 상태인 일본 전함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전속력으로 항진해 작전 해역에 다다른 미 해군 전함들과 야간 싸움에서 일본은 넋을 잃었다. 야간 함포 사격과 어뢰 운용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일본 해군은 미군의 원거리 레이더 관제사격에 차례차례 무너졌다. 15일까지 이어진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국은 순양함 2척, 구축함 7척을 잃으며 섬을 지켰다.
반면 일본은 순양함 1척, 구축함 3척에 가장 중시하던 전함 2척을 잃었다. 11척 수송 선단도 보급품 1만t과 함께 가라앉았다. 과달카날 해전 이후 전세는 미국 우세로 바뀌었다. 승인은 레이더라는 첨단 기술과 전투 의지. 격침당한 순양함 쥬노호에서 근무하던 설리반 5형제(20~28세)가 한꺼번에 전사했다는 소식은 미국인들의 적개심과 전쟁 수행 의지에 불을 지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이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