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근로자 과실여부와 상관없이 사업주를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예고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치명적인 악영향이 예상되는 중소기업들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직접 찾아가 입법 반대를 설득하고 나섰다. 특히 ‘좌 클릭’ 하고 있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마저 입법에 공감하면서 입법이 속전속결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어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본지 11월12일자 1·3면 참조
12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6개 주요 중기 단체장은 이 대표를 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포함한 8개 현안에 강한 우려의 입장을 전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고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징벌적 벌금, 작업중지와 영업정지 등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처벌수위 때문에 중소기업이 폐업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더구나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함께 정부와 여당이 기업 옥죄기와 규제 만능주의에 갇혀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김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법은 법인과 대표를 함께 처벌하고, 최소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해 (중소기업 입장에서 법이) 너무 가혹하다”며 “사업주를 함께 처벌하겠다는 것은 중소기업에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고 호소했다.
전날 박주민·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공식 예고하자 기업들은 즉각 “과잉입법으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고 반발했다. 올해 초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사망사고가 일어난 법인에 대한 벌금을 1억원 이하에서 10억원 이하로 상향하는 등 사업주 처벌을 강화했지만 산재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규제만으로 산재예방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은 “공장 내 작업이 관리될 수 있는 제조업과 달리 강풍과 같이 돌발적인 자연현상이 나타나는 건설현장의 특성을 고려한 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중소기업이 고소·고발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전달했다. 더구나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소송대응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 공백 등의 최악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중기단체 관계자는 “검찰이 CEO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 중소기업으로선 모든 경영활동이 올스톱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기업이야 시스템으로 움직이지만 중소기업은 CEO 한 명만 쳐다보며 경영을 하기 때문에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른 실익보다 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기업규제 3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등 잇따라 기업 옥죄기 법안을 쏟아내는 데 대해 김 회장은 “최근 40년 업력의 원로 기업인으로부터 ‘중소기업을 자꾸 옥죄는 법이 나와 사업을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며 “심지어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김 회장 등은 또 중소법인 초과유보소득 과세방침에 대해서도 입법 철회를 요청했고, 올해 종료되는 주 52시간제(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계도기간에 대해서도 1년 더 연장을 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 밖에 근로시간 유연화 대책 마련, 화학물질관리법 정기검사 유예, 전기요금 부담 완화, 중소기업 별도 신용등급 기준 마련 등 중소기업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8개 현안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전달했다. 이날 간담회에 동석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원하는) 국민적인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