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가 민주당 조 바이든의 승리로 귀결될 것 같다. 처음 각 주의 지도를 붉게 물들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바이든이 추월하는 ‘붉은 신기루 현상’이 나타났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심판이다. 그런데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심판의 다층화’가 나타났다. 첫째,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심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반이민 행정명령, 파리기후협정 탈퇴, 이란 핵합의 준수 불인증,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을 앞세우며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트럼프의 이와 같은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는 미국이 그동안 쌓아 올린 국제사회의 선도적 지도력을 훼손시켰다.
둘째,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에 대한 심판이다. 트럼프는 지난 2017년 취임 첫날 전임 오바마 정부의 최대 업적인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폐지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멕시코 국경에는 장벽을 세웠다. 미국 예일대 에이미 추아 교수는 4년 전에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미국사회에서 새롭게 나타난 ‘부족 본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집권 기간 동안 해당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는 이런 부족 본능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편승해 국민을 이념과 인종에 따라 분열시키고 상대를 악마처럼 만들어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결과적으로 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결성된 ‘트럼프 팬덤 정치’는 자신의 지지층을 견고하게 했지만 오히려 부메랑이 됐다. 국민은 트럼프의 분열 정치를 심판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중도층에서 바이든(64%)이 트럼프(34%)를 압도한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셋째, 트럼프 정부의 미숙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처에 대한 심판이다. 출구조사 결과 현재 중요한 과제로 ‘코로나19 억제(52%)’가 ‘경제재건(42%)’보다 크게 앞섰다. 코로나19 사태와 연관해 트럼프에게 재앙이 된 것은 ‘오바마케어’ 폐기다. 현재 미국에서는 저소득층 7,000여만명이 불완전한 의료보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로 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바이든이 오바마케어를 복원하고 보완해 의료보험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이 주효했다.
넷째, 민주적 제도와 가치를 훼손한 ‘선출된 독재자’에 대한 심판이다. 5월25일 경찰에 의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주 방위군을 투입했고 연방군 투입을 시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트럼프는 하원 탄핵조사와 청문회,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의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에게 보복 인사를 했다. 이런 일련의 행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 규범인 제도적 자제와 상호 존중을 무너뜨린 것이다.
미국 대선과 바이든 당선이 한국사회에 던진 함의는 크다. 무엇보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통치 스타일이 실패한 트럼프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집권세력은 국가주의·민중주의·포퓰리즘·민족주의를 결합한 일방주의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해 각종 정책은 실용보다 이념이 우선되고 전통적인 동맹은 훼손됐다. 더구나 자신들은 선이고 개혁세력이며 반대편은 악이고 적폐세력이라고 몰아가는 극도의 대결 정치로 나라가 두 동강 났다.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책의 근간을 흔들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좌표를 찍어 응징하고 법원·검찰·감사원 등 권력을 견제하고 심판해야 할 기관들을 무력화시켰다. 여기에 ‘대깨문’으로 불리는 친문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렸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민주와 개혁을 표방하면서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하는 연성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조국·윤미향·추미애 사태에서 드러난 집권세력의 도덕적 파탄은 심각한 지경이다. 현 집권세력은 트럼프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방주의, 팬덤정치, 포퓰리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무시, 통제받지 않는 권력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현재 단단해 보이는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바이든의 승리가 향후 한국 대권 구도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민의 최종 선택을 받을 사람은 선동가가 아니라 풍부한 경륜과 국민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