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와 정기국회 법안 심사를 앞두고 ‘거대 여당의 폭주’가 다시 예고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앞에 두고 “예산안은 법으로 정해진 시한 내에 처리할 것”이라며 “입법 심사 역시 더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협치’보다는 ‘속도’에 방점을 둔 것으로 올해 정기국회에서 쟁점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오는 2022년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내년 한 해 동안 국회에서 쟁점 법안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 역점 사업인 한국판 뉴딜 예산의 ‘송곳심사’를 예고하고 나선 가운데 상임위 배정 의석수 부족으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야 간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 민주당은 상임위 법안소위에 상정된 쟁점 법안에 대해 표결 처리를 강행하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국회 본회의 일정을 감안하면 이달 말까지는 각 상임위에서 정리가 돼야 한다”며 “법안소위 ‘만장일치’는 관행일 뿐 국회법상 표결에 부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법안소위는 세부적인 법률 조항 하나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을 기하자는 취지에서 여야 의원 ‘만장일치’ 관행을 유지해왔다. 실제 법안소위에서 표결이 진행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18대 5건, 19대 1건, 20대 1건에 그친다.
민주당은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표결이 여의치 않을 경우 소위 표결을 생략한 채 전체회의에 상정하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 법안의 경우 야당 법안을 심사하지 않은 채 정부나 여당 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시켜 표결에 부치는 방안이다. 야당의 비토권을 배제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정안이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 9월 전체회의에 기습 상정된 바 있다. 법안소위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야당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실제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위원회 회의가 예정된 18일에도 결론을 못 낼 경우 “법 개정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재차 야당을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최대 쟁점으로 꼽히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도 이 같은 방법을 통해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은 이른바 ‘3%룰(대주주 의결권 3% 제한)’에 대해 상임위 차원에서 일정 부분 완화된 대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지만 정부 원안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노동관계법과 연계 처리 입장을 내놓은 상황에서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각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5·18 진상규명 특별법 및 역사왜곡 처벌법’ 역시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전체회의 직행 가능성이 점쳐진다.
여당은 예산안마저도 단독처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한국판 뉴딜 예산 10조원을 삭감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비심사 과정에서 일부 상임위는 한국판 뉴딜 예산에 대한 여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파행을 겪기고 했다. 한국판 뉴딜 예산에 대한 여야의 긴장감은 예결소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내년도 556조원의 예산을 짬짜미로 방임·방관·방조하며 심사하려는 것을 잘 안다”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 속에도 극심한 ‘야당의 발목잡기’ 프레임을 통해 예산안 단독 처리에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되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