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002320)그룹 물류 계열사인 ㈜한진의 2대주주로 올라선 사모펀드(PEF) 운용사 HYK파트너스가 섬유회사 경방과 함께 한진 그룹 오너 일가를 상대로 주주 행동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지분 확보 배경에 대해 말을 아꼈던 경방이 입장을 바꾸고 처음으로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이다. 대한항공(003490)의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 결정으로 KCGI와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HYK파트너스가 경영진 압박을 위해 KCGI와 손을 잡을지 주목된다.
한우제 HYK파트너스 대표는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 방식으로 회사의 가치가 주식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다”며 “㈜한진의 주주 가치를 제고를 위해 활동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분을 확대할 때마다 ‘투자 수익 창출을 위한 단순 투자’라며 말을 아껴왔던 경방 측은 오너일가를 압박해 직간접적으로 경영권 분쟁에 참여할 예정임을 시사했다.
‘HYK1호펀드’는 HYK파트너스가 설립한 펀드로, 현재 ㈜한진의 지분율 9.8%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해당 펀드의 최대 출자자(LP)는 경방으로, 펀드를 통해 ㈜한진 주주로서의 지배력을 우회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 주요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던 경방은 계열사 등을 동원해 빠른 속도로 지분을 매집했고 지난 9월 국민연금과 GS홈쇼핑 등 기존 주주를 제치고 2대 주주에 올라섰다. 이렇게 확보한 주식 전량은 지난 10월 HYK파트너스가 결성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HYK1호펀드’에 모두 넘겼다.
한진칼(180640)과 ㈜한진의 지분을 보유한 KCGI가 한진그룹 오너일가와 경영권 분쟁 중인 가운데 시장에서는 경방이 어느 편에 설지 주목해 왔다. KCGI와의 연대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게 떠올랐다. 한때 ㈜한진 지분율 10%를 넘어섰던 KCGI(엔케이앤코홀딩스)가 지분을 줄이고 한진칼에 집중하는 시기에 경방이 본격적으로 지분을 늘렸다. KCGI의 주요 투자자인 조선내화(000480)는 경방의 지분을 3%가량 보유하고 있다. 김담 경방 회장과 이인옥 조선내화 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진칼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반발하고 있는 KCGI는 자회사 한진의 택배사업 분리 매각 등을 임시 주총 안건으로 준비하는 등 대응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HYK가 KCGI와 연대해 주주 설득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KCGI는 지난 9월경 ㈜한진의 잔여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그러나 HYK는 이 같은 추측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한 대표는 “KCGI와 접촉한 적은 없다”며 “같은 회사의 주주이지만 주주활동은 따로 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KCGI와의 연계 가능성은 부인했지만 한진칼의 아시아나 인수 결정을 두고 KCGI를 비롯한 한진칼 주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앞서 대한항공은 2조5,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1조8,000억원 아시아나항공의 신주와 영구채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한진칼이 이 가운데 7,300억원을 투입해 대한항공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 데 이를 위해 산업은행을 상대로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한 대표는 “이번 매각이 정부와 금융당국 입장에선 산업 재편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간편한 인수·합병(M&A)이지만 기존 주주 입장에선 대규모 부실 자산을 떠안게 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경영권 분쟁 중인 오너 일가의 경영 유지를 위해 한진칼이 제 3자 배정 형태의 유상증자를 강행하는 것은 주주 이익에 반할 수 있다”고 말했다.
HYK 측은 내년 정기 주총을 목표로 본격적인 주주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한진이 주력하고 있는 물류 사업을 미국 골드러시 시대의 ‘청바지’에 비유하며 이커머스 산업 확대와 언택트(비대면)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표는 “택배와 물류 등 ㈜한진이 구축한 인프라로 매년 영업이익이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면서 “투명한 회사 운영으로 회사의 가치를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