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이 KCGI(강성부펀드)의 가처분소송 인용으로 한진칼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플랜B’를 마련했다. 국내 1·2위 항공사 간 빅딜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19일 열린 온라인간담회에서 KCGI의 가처분신청과 관련해 “다수의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 인용 여부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 가처분 인용 시 거래는 무산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차선책을 신속히 마련해 추진할 것”이라면서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외부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매각이 무산된다면 기존 계획대로 채권단 관리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3자연합(KCGI,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산은의 한진칼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증에 반발하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절차 중 핵심으로 꼽히는 제3자 유증 방식을 택한 것과 관련해 “주주배정 유상증자의 경우 2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돼 긴급한 자금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혈세로 재벌 감싸주기에 나섰다는 특혜 논란도 일축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경영권을 확보하고 행사하는 분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딜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것이며 고용을 유지하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재벌 특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둘러싸고 재벌 특혜 논란이 계속되자 산업은행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내년에도 항공산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논란을 조속히 털고 양사 통합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산은은 혈세로 재벌에 특혜를 준다기보다 항공산업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19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한때 우리나라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빅2가 경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이는 유효하지 않은 명제”라며 “이제는 (두 항공사를) 합쳐서 최대한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 국적 항공사와 운송업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앞서 산은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5,000억원을 투입하고 3,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 자금 등으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 계획이 알려진 후 시장에서는 산은이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지켜준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은 네버엔딩 스토리”라며 “네버엔딩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두 회사(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모두 망한 다음 항공산업을 재편하라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국민 혈세로 재벌을 지원해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모든 산업 중 재벌이 없는 산업이 어디 있겠냐”며 “재벌을 제외하고 항공산업 재편을 누구와 협상하겠느냐. 산업은행은 경영권을 확보하고 행사하는 분(조원태 회장)과 협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산은은 신속한 통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작부터 가시밭이다.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KCGI(강성부펀드) 3자 연합이 3자 배정 유증 결정에 대해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법원이 3자 연합의 손을 들어줄 경우 산은의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무산된다. 이 경우 산은은 다시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관리체제로 들어가 정책 자금을 투입해 정상화한 뒤 재매각해야 한다.
당장 3자 연합은 산은의 한진칼 유상증자가 상법에 위배된다며 주주 배정 유증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은은 주주로서 통합 작업에 참여해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이끌어내고 감시 역할을 하기 위해 주주 배정이 아닌 3자 배정 유증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주주 배정 유증을 할 경우 2개월 이상 시간이 걸리는 점도 고려됐다.
이 회장은 “저희는 중간에서 양쪽 싸움을 견제하고 중립적인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을 뿐이고 조 회장이나 KCGI 등 3자 연합을 지원하지 않는다”며 “건전하게 갈 수 있도록 경영권을 행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회계·항공산업 등 외부 전문가로 윤리경영위원회·경영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항공사의 경영활동을 감시하고 평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한진칼·대한항공에 사외이사 3인, 감사위원도 추천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달라”며 “예를 들면 경영능력보다 정부 뜻에 맞는 경영진을 추천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산은은 경영진 추천을 안 하고 사외이사만 추천한다. 따라서 정부 입맛에 맞게 한다는 그런 주장은 정치적 해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양사의 통합 절차가 마무리돼도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게 과제로 남는다. 산은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양사의 대형항공사(FSC) 점유율이 42%, 저비용항공사(LCC) 점유율이 24%로 총 66% 수준이다. 산은은 해외 대부분 국가에서 ‘1국가 1FSC’이고 해외에서 항공사 간 결합을 조건부로 인가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해 결합 심사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은 측은 “통합작업 이행 없이 현재의 양대 국적항공사 체제로 정상화를 추진할 경우 2027년까지 총 5조4,000억원의 정책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통합할 경우 2조3,000억원의 정책자금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조 회장, 강성부 대표와 면담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빅딜이 조 회장과 이 회장의 밀실야합 결과라는 주장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이 회장은 “조 회장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며 “조 회장은 사인으로서가 아니라 저희가 협상한 한진칼의 대표로 참여한 것이지, 주주로서 접촉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나아가 강성부 KCGI 대표에 대해서는 “(사모펀드 대표인 강 대표는) 자기 돈 0원, 남의 돈으로 하는 분인데 이분에게 어떤 책임을 물릴 것이냐”며 “3자 연합은 협상 대표가 될 수 없는 사인이기 때문에 협상을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했다.
/김지영·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