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동해 명칭, 표기 문제의 새 패러다임

유의상 동해연구회 감사·전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

전 세계 66개 수역에 부여된 지명

국제수로기구 '숫자'로 변경 결정

동해 수역도 '일본해' 표기 사라져

韓 새 데이터세트 개발에 참여를

유의상 동해연구회 감사·전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유의상 동해연구회 감사·전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



동해 수역 표기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대립으로 그간 개정판 발간에 실패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S-23)’의 미래에 관한 새로운 안이 곧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개최된 국제수로기구 제2차 총회에서 마티아스 요나스 사무총장이 ‘해양과 바다의 경계에 대한 비공식 협의 결과’를 보고했고 회원국들의 회의록 회람을 거쳐 이달 말께 확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무총장 보고의 핵심은 바다 명칭을 지명이 아닌 ‘고유의 숫자체계(a system of unique numerical identifiers)’로 표기하는 ‘데이터세트(S-130)’를 개발해 기존 S-23을 대체하는 것이다. 1953년 이후 개정되지 않은 S-23은 전 세계 바다를 66개 수역으로 나누고 각 수역마다 지명을 표기했으나 (동해수역은 52번으로 ‘Japan Sea’로 단독 표기), 새로 개발되는 데이터세트에는 구획된 수역에 지명이 아닌 숫자가 부여되며 동해 수역도 ‘일본해(Japan Sea)’ 표기가 사라지고 특정 숫자로 대신하게 된다. 다만 기존 S-23은 해양과 바다의 경계에 관한 정보제공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국제수로기구 출판물의 하나로 공개할 예정이다.


국제수로기구에서의 동해표기문제 교섭을 위해 몬테카를로를 수차례 방문한 바 있는 필자에게는 이번 결과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모나코 F-1 그랑프리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던 도시에서 비싼 호텔비로 인해 현지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외곽의 허름한 숙소에 머물며 어려운 교섭을 위해 분투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주장하는 한국과 ‘일본해’ 단독표기를 고수하고자 하는 일본의 23년 대립을, 지명이 아닌 숫자표기라는 창의적 방식으로 돌파한 요나스 사무총장의 결단력과 리더십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인내심과 지혜로운 대응으로 무난한 결론을 도출해 낸 우리 정부 교섭담당자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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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리의 ‘동해·일본해’ 병기 노력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국력과 기득권을 앞세운 일본에 우리 대표단은 개인 역량과 팀워크로 맞서야만 했다. 북한과의 공조가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한일 대립으로 번번이 S-23 개정에 실패한 국제수로기구는 다른 회원국들의 피로감이 커지면서 2012년 제18차 회의에서 “S-23 개정과 관련한 향후 추진방향에 대해 현시점에서 어떠한 추가적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고 이로 인해 교섭전망이 극도로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우리 대표단은 2014년 4월 특별회의에서 막후교섭을 통해 “차기 정기회의에서 회원국 제안이 있을 시 S-23 개정문제가 다시 논의될 수 있다”는 결정을 어렵게 유도해냄으로써 꺼져가던 교섭의 불씨를 살려냈다. 그리고 2017년 4월 제1차 총회를 통해 S-23 개정논의를 위한 관계국 간 ‘비공식협의체’ 구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비공식협의체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결국 요나스 사무총장이 숫자표기체계를 도입하는 안을 제시, 이번 총회에 보고한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진행될 디지털 데이터세트 개발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디지털 보급이 뒤진 국가들에 대한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통해 해양과 바다 경계에 관한 전자표준화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1992년부터 추진해온 동해명칭 확산 캠페인과 교섭과정을 볼 때 국제수로기구를 대상으로 한 교섭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기구를 상대로 한 교섭이 일단락된 만큼 우리의 교섭역량과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그 대상은 여전히 일본해 단독표기를 고수 중인 국가와 지도제작사 등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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