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5만234가구로 평년(4만여가구)보다 많다. 수도권은 19만가구, 전국은 36만가구로 적지 않은 규모다. 임대차 시장 바로미터인 아파트 입주 물량만 놓고 보면 현재의 전세 대란이 벌어진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세난의 원인은 바로 정부의 집값 정책이다. 각종 규제에다 새 임대차법 시행까지 겹치면서 전세로 나올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 ‘아실’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 매물은 임대차법 개정 직전인 지난 7월 중순 4만3,354개에 이르렀지만 이달 24일 현재 1만3,165개로 69.7% 감소했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내년과 내후년에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서울만 놓고 보면 입주 물량이 올해 5만가구, 내년 2만가구, 내후년 1만가구로 줄어든다. 정부는 현재 규제 정책을 유지하는 대신 ‘빌라·호텔 전셋집’으로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이를 믿는 전문가는 없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내년과 내후년은 입주 물량이 줄어 지금의 시장 분위기라면 전세난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줄어드는 새 아파트, 호텔 전셋집 대안?=부동산114에 의뢰해 집계한 결과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5만234가구에서 오는 2022년에는 1만7,010가구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도 올해 19만2,011가구에서 내년에 14만934가구로 감소하고 2022년에는 13만4,408가구로 줄어든다. 전국 기준으로는 올해 36만가구에 이르는 입주 물량이 내년에 25만가구로 줄고 2022년에는 24만가구로 감소한다.
정부는 ‘11·19 전세 대책’에서 이 같은 입주 물량 감소분을 ‘빌라 및 호텔 전셋집’으로 상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공 전세 물량을 2022년까지 11만4,000가구 공급한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4만9,000가구를 집중 공급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전세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감소하는 주택은 아파트인데 정부가 늘리는 주택은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호텔 개조 주택이다. 공공 임대주택이 아파트 전세 수요자들을 만족시켜 흡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여 수석연구원은 “1~2인 가구의 경우 단기적으로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전세난을 호소하는 주된 계층은 (빌라나 호텔이 아닌) 아파트 수요자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주거 형태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공급 대책이 실현되더라도 (전세난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1990년 임대차법 개정 때와는 달라=정부는 현재의 전세난이 임대차 제도 개선에 따른 초기의 혼란이며 차츰 전월세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90년 주택임대차법 개정 때의 사례에 빗대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와 관련해 “과거 (1990년) 전세 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릴 때 약 7개월의 과도기적 불안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임대차 3법 등 급격한 시장 변화로 과도기가 길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의 전세난이 ‘과도기’이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시와 비교할 때 제도의 형태와 공급 상황까지 모두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제도 자체의 변화 폭이 이번이 훨씬 크다. 1990년 개정에서는 전월세 기한을 1년 연장하는 방식이었지만 현재는 2년에서 다시 2년이 늘어났다. 계약갱신청구권뿐 아니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해 임대료 상한을 법으로 규정한 것은 1990년 당시 개정에는 없던 제도다. 또 기존 계약에는 개정 법안을 적용하지 않았던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기존 계약에도 강화한 법안을 소급 적용했다.
무엇보다 아파트 공급량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1990년 당시에는 1기 신도시 입주라는 거대 공급 이벤트가 있었다. 총 29만여가구에 이르는 5개의 1기 신도시는 1991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반면 내년 수도권 전체 아파트 입주 물량은 14만934가구로 오히려 올해(19만2,011가구)보다 5만1,077가구 줄어든다. 3기 신도시가 예정돼 있지만 정부가 목표로 한 첫 입주마저 5년 뒤인 2025년부터 시작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990년대 당시 상황과 비교해 이번에도 7개월 정도가 지나면 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가 부족하다”며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규제하는 등 지금과 같은 정책 방향까지 더해져 오히려 전세난은 당시보다 악화되면 악화됐지 개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