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주재한 2050 탄소 중립 범부처 전략 회의에서는 임기 내 실질 탄소 배출량 ‘제로화’ 기틀 마련을 위한 각종 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탄소 저감의 핵심 주체인 기업과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정부의 일방적인 대책이 나오면서 “민간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내놓은 2050탄소중립위원회 신설을 놓고 기능이 유사한 환경 관련 회의체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비효율적인 정책 집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2050 탄소 중립 관련 첫 전략 회의를 열고 “다음 정부로 미루지 않고 우리 정부 임기 안에 탄소 중립으로 나아가는 확실한 기틀을 마련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관계 부처에 속도감 있는 정책 이행을 당부했다.
하지만 재계와 산업계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중장기적으로 세제와 부담금 제도의 개편을 검토해나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행여 조세 정책을 통한 탄소 중립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실현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목표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가 나 홀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업종별로는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과 석유화학·자동차 업계의 우려가 가장 큰 상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산업은 억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들의 충격이 클 텐데 사회적 논의 없이 목표부터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탄소 산업에 대한 세제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와 산업계는 ‘충분한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서 민간과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인프라와 재정 지원 등에 대한 사전 준비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한정 늘어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밝힌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하면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20개로 늘어난다. 더욱이 환경과 관련한 회의체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환경부 산하)와 녹색성장위원회(국무총리실 산하),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국무총리실 산하), 국가기후환경회의(대통령 직속) 등 4개가 가동 중이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지난 6월 한 간담회에서 위원회 난립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미세먼지특별위원회가 있는데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또 들어섰다”고 비판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3일 이들 기구의 통폐합을 제안했다.
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뒤 탄소 중립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것을 두고 학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이 왜 원자력을 가지고 가겠나.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경우 무탄소를 선언하면서 원자력과 함께 해상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겠다고 했다”면서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탄소 중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비판했다. /한동희·허세민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