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의 사용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승인했다.
2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정부는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사용을 승인하라는 의약품규제청(MHRA)의 권고를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 백신은 다음 주부터 영국 전역에서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은 현재 화이자 백신 4,000만 회분을 주문한 상태다. 1명이 2회 접종해야 하므로 2,000만 명분이다. 화이자는 지난달 18일 자사의 코로나19 백신이 3상 임상 시험에서 95%의 효과를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이 백신을 승인함에 따라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백신 승인도 곧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영국 당국이 화이자 백신의 예방 효과와 안전성을 먼저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은 이날 화이자 백신이 “안전과 품질·효과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했다”고 긴급 사용 승인을 내린 배경을 밝혔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백신이 다음 주부터 영국 전역에서 제공될 것”이라며 “신속하게 (백신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영국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백신 공급을 체결한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7월 화이자 백신 3,000만 회분을 주문했으며 이후 1,000만 회분을 추가로 계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체 백신 주문량의 약 10%에 해당하는 400만 회분이 연말 이전에 영국으로 배송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영국 정부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백신 접종을 위해 이동하기 어려운 요양 시설 거주자와 요양 보호사들을 대상으로 백신을 우선 접종한다. 이후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80대 이상의 노인과 의료진이 백신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MHRA는 미국 제약사 모더나의 백신은 물론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개발하고 있는 백신의 사용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7개 제약사를 상대로 확보한 백신은 3억 5,500만 회분이다. 백신 확보 규모와 승인 속도를 고려하면 영국이 코로나19 대유행에서 가장 먼저 벗어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오는 10일 백신 긴급 사용 여부를 심사하는 미국은 우선 접종 순위를 발표했다.
전날 워싱턴포스트(WP)와 CNBC에 따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의료인 등에게 먼저 접종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찬성 13 대 반대 1로 의결했다. WP는 백신이 승인된 초기에 공급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병원의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의료 종사자들의 역할을 고려해 최우선 순위로 정해졌다고 설명했다. 요양 시설 거주자·직원의 경우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해 우선순위에 올랐다.
모든 미국 의료 종사자가 접종받는 데 3주가 걸릴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년 6월까지 원하는 미국인 모두가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WP는 이 권고안이 로버트 레드필드 CDC 소장에게 보내지고 레드필드 소장은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 장관에게 통보할 것이라며 “권고안이 승인될 경우 미국 내 백신 접종에 대한 CDC의 공식 권고안이 돼 주 정부에 지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CDC의 국립 면역 및 호흡기 질환 센터 소장인 낸시 메소니에이 박사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모든 의료 종사자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데 3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 관료들은 올해 말까지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공급량이 약 4,000만 회분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2회 접종이 필요한 점을 고려할 때 2,000만 명이 접종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백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접종 순위에 대한 논란은 차차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코로나19 백신 개발단의 수석 고문인 몬세프 슬라우이는 모든 미국 국민이 접종할 수 있을 정도의 백신이 내년 6월까지 공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중순까지 대부분의 미국인이 접종하면 좋겠다”며 “사람들이 백신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면서 지금의 망설임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분한 백신 접종으로 내년 하반기에 대유행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의 보건 규제 당국인 유럽의약품청(EMA)은 성탄절 기간에 품질·안전성·효과성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합격점을 받으면 EMA의 인간의약품 과학위원회(CHMP)는 늦어도 29일까지 긴급회의를 열어 평가를 확정할 예정이다.
EMA가 백신의 효용이 위험성을 능가한다는 판정에 이르면 조건부 판매 승인을 내리는 방안을 권고한다. 그러면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의 조건부 판매 승인을 위한 신속 결정절차를 며칠 내에 가동한다. 이 과정이 순탄하게 이뤄질 경우 EU 회원국들의 화이자 백신 사용은 이르면 내년 초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곽윤아·김연하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