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사회가 불공정하고 기회에 불평등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정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2일 국민권익위원회와 국제투명성기구(TI)가 주최한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IACC)에서 “사회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샌델 교수는 이날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의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특별 대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특히 부의 불평등이 심화했다”며 “이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는 평소 우리가 중요성을 간과하던 노동자, 택배 기사, 트럭 운전사, 식료품 종사자들에게 생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며 “이들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하고 노동자들도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능력주의가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샌델 교수는 “완벽한 능력주의 사회라면 최고의 대학에 입학해 최고의 기업에 취업하고 최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이 최고의 강의와 사교육을 받아 대학 입시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권익위 설문 조사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한국 속담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단 11.7%만이 긍정하고 56.6%가 불가능하다고 답한 결과를 두고 그는 “한국인들이 미국보다 현실을 더 정확히 판단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샌델 교수는 “현실적으로 서민이 상류층, 심지어 중산층으로 상승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 미국인들과 다르게 한국인들은 자신의 배경과 상관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경제·사회를 개혁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라고 말했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법률 체계에 비춰 높은 학력이 정치에 필수적이지 않느냐’는 청년 패널의 질의에는 대해서는 “고등교육 여부와 명문 대학 입학이 부(富)와 기회에 너무 많은 기준이 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학생들은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고 어떤 일에 열정이 있는지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떠밀려 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실패한 사람은 물론 치열한 경쟁의 문턱을 넘은 승자에게도 지속적인 불안감·압박감을 낳게 하고 이런 정신적 상처들이 높은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최고의 학력을 갖춘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반드시 실질적 지혜를 발휘하는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