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막 시작되던 지난 2003년 초 LG카드 사태 여파와 중국발 사스 공포로 내수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해 10월 부동산 집값을 잡겠다며 보유세 강화를 골자로 하는 10·29 대책을 내놓았다. 경기가 한풀 꺾이는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는 ‘역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1년도 안 된 경제부총리가 교체됐고 이헌재 부총리가 등판해서야 겨우 사태가 수습됐다.
정부의 선한 정책도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데 못 맞춘 게 화근이 됐다. 정책을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다. ‘퉁퉁 불어터진 국수’도 문제지만 ‘설익은 국수’도 외면을 받는다. 모두가 타이밍의 문제다.
우리나라가 ‘구조적인’ 장기 불황에 빠졌다는 진단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규제 완화와 함께 공공·노동·교육 분야 구조 조정을 해야 고비용·저효율의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고언들이 쏟아졌지만 현 정부는 야당 때나 여당이 된 지금이나 별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최저임금은 최근 3년간 군사작전 하듯 인상했다. ‘5년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였겠지만 매년 9.2%씩 올려야 가능한 목표다. 뒤늦게 여권과 청와대 내부에서 “미스(실책)가 있었다”는 자성이 나왔다. 최저임금을 올린 게 문제가 아니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오른 최저임금을 줄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고 올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내년부터 30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되는 주52시간제 시행도 논란이다. 코로나19 대응도 벅차고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계도 기간을 한 번 더 연장해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부는 “해보지도 않고…”라고 얘기하고 싶겠지만 현장의 혼선과 갈등은 불문가지다.
사망자 1명 이상의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에게 징역형을 물리는 여권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놓고도 중소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 처벌을 높인다고 산재 예방 효과가 있을지도 모호한데 이중·삼중 처벌 논란이 나와서다.
‘나쁜 절세’를 일삼는 ‘개인 유사 법인(가족 기업)’을 잡아 세수를 확보하겠다며 밀어붙였던 초과 유보소득 과세 법안은 국회에서 퇴짜를 맞아 정부 체면이 구겨졌다. 코로나19로 비상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금을 들고 있다고 세금을 매기겠다니 어느 기업인들이 앉아서 당하고 있겠나.
30년 레미콘 사업을 해온 A업체 대표는 “올해처럼 어렵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반월이나 남동공단과 같은 수도권 공단 외에 지방 공단 대부분은 생기를 잃고 있다. “권리금을 안 받고 넘기겠다”는 상가 급매매도 급증하고 있다. 신형 노래방 기기는 팔리지 않고 폐업 노래방서 나온 중고 기기는 ‘×값’이 됐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중소기업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여당이나 정부에서 중소기업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타이밍 안 맞는 정책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998377’도 무색할 지경이다. 전체 기업의 99%, 전체 종사자의 83%, 전체 국민의 77%가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인데 지금은 잘나가는 벤처나 스타트업에 밀려 제조 중소기업은 ‘홀대’를 받고 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너무나 유명한 정치 슬로건이 있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판세를 단번에 뒤집은 게 이 한마디였다. 누적된 쌍둥이 적자로 경제가 활기를 잃어가고 있던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던진 화두다. 열세였던 클린턴은 ‘아버지 부시’의 재선을 막고 대통령이 됐다.
해를 넘기면 온 사회가 2022년 대선을 향해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이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슬로건은 어떤가. “바보야, 문제는 중소기업이야. 그리고 타이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