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헤리티지 재단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는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에게 득표율 38.5% 대 61.1%로 참패한다. 이후 1972년 대선 승리로 연임에 성공한 리처드 닉슨마저 워터게이트사건에 휘말리며 미국 공화당은 대공황의 주범과 도덕적으로 타락한 적폐 세력으로 내몰린다. 바로 이때 ‘작은 정부’의 보수 가치 복원을 외치는 목소리가 움텄다. 1973년 의회 보좌관 출신인 에드윈 퓰너가 맥주 재벌 조지프 쿠어스의 기부금 25만 달러를 밑천으로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을 창립한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출범과 동시에 지식인들을 모아 책과 잡지를 만들고 청년층에 보수의 가치를 전하는 데 매진했다. 다루는 분야도 미국 정치와 경제, 외교 안보, 유럽과 아시아 문제 등 국가 정책 전반을 아우를 정도로 폭넓었다. 1981년에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자 규제 완화, 지출 감소, 정부 개입 축소 등을 핵심으로 하는 2,000여 개 항목의 정책을 제시하며 명성과 권위를 쌓았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헤리티지의 평가는 남달랐다. 워싱턴DC의 재단 사옥에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기념한 ‘이병철 룸’과 ‘정주영 룸’을 꾸몄을 정도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네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긴급 브리핑을 하는 등 북한 문제에도 정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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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을 만든 퓰너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권 인수위 선임고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는 트럼프의 입장을 전했다. 퓰너는 8일 헤리티지 재단 산하 아시아연구센터 회장 자격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기업 규제 3법을 공격했다. “공정 경제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누구에게 공정하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한국의 민간 부문과 기업에 득보다 실을 더 많이 안겨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여당이 강행 처리한 규제 3법은 상당한 손실을 초래할 텐데 걱정이 크다. 어쨌든 우리도 유능하고 권위 있는 싱크탱크를 가질 때가 됐다. ‘한국판 헤리티지’가 나와 국가 비전을 제시해주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성진 논설위원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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