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태와 관련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며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보수진영과 당내 반발에도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대국민사과를 단행했다. 그러나 사과문에 아직 사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정경유착’ 단어를 넣고 반기업정서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보수진영에서 또 다른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金 “MB·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 용서 구한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구속 상태에 있다”고 말하며 “저희가 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기도 하다. 저희 당은 당시 집권 여당으로서 그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했으며,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다”고 반성했다. 이어 “우리 정치의 근본적 혁신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제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위원장은 당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4년이 되는 지난 9일께 대국민사과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일방처리 등에 맞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선 점 등을 고려했고 이날 전격 대국민사과를 결정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사과 없이는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해왔다. 최근 4번의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이 재집권의 희망을 가지려면 여당의 잘못으로 치러지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국민사과가 통계상 중도층이 30% 수준으로 나오는 서울선거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기현 “미래 위한 용기”·박대출 “안 하느니만 못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자 반응은 엇갈렸다. 당 중진 김기현 의원은 “굴욕이 아닌 나라의 미래를 위한 용기있는 진심”이라며 “수권정당으로서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친박계 박대출 의원은 “대통령의 수감은 배신과 왜곡, 등 다양한 면이 있는데 단순한 잘못으로 치부하고 고차원 방정식을 1차원으로 풀었다”고 비판했다.
익명으로 의견을 밝힌 의원들은 대부분 “사과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대구·경북(TK) 지역 한 의원은 “어느 정권이든지 역대 정부와 집권당이 국정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의 한 의원은 “3040세대와 중도층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사과는 열 번, 백 번도 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사과가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을 위한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반기업’ 다시 확인…“규제 개혁·기업활력이 보수주의” 반발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번 대국민사과가 보수진영에 또 분열의 씨앗을 심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사과문에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정경유착’이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특정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승계 과정의 편의를 봐준 혐의가 있다”고 적시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정경유착은 삼성 승계 문제이고 아직 법원 판결이 안 났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국내 굴지의 글로벌 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경영활동을 옥죄는 내용을 담은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에 공개적으로 찬성한 바 있다. 이번에는 대국민사과문에 반기업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에서는 국민의힘의 혁신 방향이 기업활동에 대한 장애물을 걷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규제를 세우 법안들을 내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당내에서도 김 위원장의 반기업 기조를 “따르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헌법이 보장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법은 위원장의 뜻이라고 따라갈 수 없다”며 “보수정당은 기업의 자율성을 더 담보해야 하고 규제를 혁파하고 필요하다면 감세도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원 역시 “(김 위원장의 기업관에 대해) 크게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좌파정책을 비판해온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나섰다. 홍 의원은 “사과를 하려면 야당을 (여당의) 2중대 정당으로 만든 것을 사과하라”라고 지적했다. 특히 내년 보궐선거를 위해 보수정당의 가치를 훼손하면 중도층과 보수층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중도층을 끌어안겠다는데 오히려 고정 지지층만 분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김혜린 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