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중대재해법은 기업 연좌제" 30개 경제단체 철회 촉구

"경영자·원청에 형벌 가혹"

기업 10곳 중 9곳이 반대

"처벌만 강화하면 경영 위축

투자·일자리 모두 막힐수도"

김용근(왼쪽 세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등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경총김용근(왼쪽 세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등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경총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30개 경제 단체가 16일 국회가 입법 추진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철회를 촉구했다.

경제단체들은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은 헌법과 형법의 원칙을 위배하고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가혹한 형벌을 부과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입법 추진을 중단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중대재해법상 유해·위험 방지라는 의무 범위가 추상적·포괄적이어서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과 형법상 책임주의·명확성 원칙에 중대하게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상 과실범에게 2~5년 이상을 하한으로 징역형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부과해 산업 규제 대응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중대재해법은 인과 관계에 대한 증명 없이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책임을 부과한다”면서 “이는 관리 범위를 벗어난 불가능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고 공동 연대 처벌을 가하는 연좌제와 같다”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이날 국내 기업 65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법 기업 인식도 조사도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90.9%가 중대재해법 제정에 반대했으며 대다수 기업은 과도한 처벌로 생산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유해 위험 방지 의무를 포괄적으로 지우고 사망이나 상해 사고 발생 시 형사 처벌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 안에는 사망 사고 발생 시 3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상 벌금, 상해 사고 발생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이 규정돼 있다. 법인에도 1억~2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영업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박범계 의원 안도 이와 유사하다. 구체적인 안전 의무 위반 행위가 확인된 경우에 한해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에게 포괄적 의무를 지우고 경영 책임자를 의무 대상자로 적시하고 있다. 또 산안법은 징역형이나 벌금형의 하한이 없는 반면 중대재해법은 하한이 있어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는 게 경제계의 입장이다. 특히 원청의 책임 범위를 사업장 내로 한정하는 산안법과 달리 중대재배법은 사외 도급에까지 공동 의무를 부과해 책임 지기 어려운 재해에 대해서까지 처벌을 받는 등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경제 단체가 실시한 기업 인식도 조사에서 기업의 78.7%가 중대재해법의 처벌 수준이 ‘매우 과도하다’고 답했으며 89%는 사업주 처벌 강화로 중소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재해 예방을 위한 투자 여력이 부족한데다 사업주가 경영 활동을 직접 관장하고 매출액도 적어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벌금 부과 시 상대적으로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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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을 강화할 경우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 응답 기업의 63.6%는 ‘경영인의 실형으로 인한 경영 리스크 증가’를 꼽았으며 60.9%는 ‘과도한 벌금 및 행정 제재로 인한 생산 활동 위축’을 우려했다. ‘사업주, 경영 책임자 기피 현상 초래 등 기업가 정신 위축(46.2%)’, ‘원·하청 간 안전 관리 책임 소지 혼선 야기(20.6%)’를 우려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중대 재해 예방을 위한 실질적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48.8%는 ‘업종 특성과 기업 규모를 고려한 안전 제도 개편’과 ‘불합리한 중복 규제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경제 단체들은 이날 산안법이 시행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로 기업 처벌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 만능주의라고 비판했다. 또 기업 인식도 조사를 토대로 우리나라 산업 안전 정책의 기조를 사후 처벌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670여 개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재정비해 원청과 하청 간 책임 소재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면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근로감독관이 아닌 별도의 산업안전 전문요원 운영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이날 우리나라와 주요5개국(G5)의 산업 재해 처벌 관련법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산재 처벌이 이미 기존 산안법만으로도 주요국에 비해 강력한 반면 사고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비교 대상 국가 중 미국·독일·프랑스는 기업이 산업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위반 사항에 대해 벌금만 부과한다. 일본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엔 이하 벌금, 영국이 2년 이하 금고 또는 상한 없는 벌금을 부과하지만 징역형의 수준은 한국보다 낮았다. 한국의 경우 산안법상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근로자 사망이 5년 내 반복되면 형량의 50%를 가중하도록 하고 있다.

한경연은 “산안법보다 경영 책임자의 의무를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규정한 중대재해법은 기업 활동 위축,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추가적인 법보다는 산업 현장의 효과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능현·한재영기자 nhkimchn@sedaily.com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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