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개발이 엎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애플에서 발톱을 갈고 있었던 게 드러났습니다. 전기차·자율주행차가 전 세계 미래 산업의 핵심이라는 게 증명된 셈입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
22일 애플의 전기 자율주행차 계획이 흘러나오자 국내 완성차 업계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애플은 지난 2014년 ‘타이탄 프로젝트’라는 자율주행차 개발 계획을 시작했지만 최근 수 년간 이 부문 엔지니어들을 감원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플레이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외신을 통해 배터리 내재화 계획 등 구체적인 전략이 드러나면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관련 업계가 영향을 받는 분위기다. 천장을 모르고 치솟던 테슬라 주가마저 ‘애플카’ 소식이 전해지자 6.5% 급락했을 정도다. 애플의 등장만으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모빌리티가 미래 각국의 생사를 좌우할 핵심 융합 산업이라는 게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이 뛰어든 분야인 자율주행차는 미래 모빌리티 중에서도 궁극의 단계로 꼽힌다. 전기차·수소차 자체로도 친환경 미래차로서의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결국은 전동화를 기반으로 한 완전 자율주행차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목표라는 관측이다. 자율주행차는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이를 뒷받침하는 배터리(전력)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애플·구글·아마존 등 테크 기업들까지 뛰어들고 있는 배경이다.
완성차 업체들도 스타트업, 전통 기업을 막론하고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사활을 건 투자를 거듭하고 있다. 선두 주자는 테슬라다. 올해 중국 공장을 본격 가동하며 양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보여준 테슬라는 내년 중국 생산능력을 올해 25만 대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고 독일 베를린 공장을 가동해 유럽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와 가장 큰 차별점으로 꼽히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OTA)과 자율주행 기능(FSD) 역시 축적 데이터가 증가하면서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연기관 시대의 절대 강자 중 하나였던 도요타마저 미래차 경쟁에서는 다소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절치부심 중이다. 도요타의 ‘게임 체인저’는 전고체 배터리다. 도요타는 최근 주행거리와 안전성을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크게 향상시킨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이를 내년부터 차량에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하이브리드에 치중했던 실책을 극복하고 단숨에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리더로 떠오른다는 게 도요타의 목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꾸준히 5위 내에 오르고 있는 현대·기아차도 전기차, 자율주행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합종연횡과 투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미국 앱티브와 무려 40억 달러 규모의 자율주행 합작사를 설립했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개발해 내년에 출시되는 아이오닉 전기차에 탑재한다. 배터리 내재화도 꾸준히 흘러나오는 현대·기아차의 미래차 시나리오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005380)그룹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이달 초 열린 e-GMP 간담회에서 “배터리 제조사가 될 준비를 마쳤고 전고체 배터리 또한 연구하고 있다”며 “때가 되면 최신 배터리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내연기관 전통이 강한 탓에 전동화에서 다소 뒤처졌다는 지적을 받는 독일 완성차 업체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BMW는 당초 내연기관 공용 플랫폼 전략을 고수했지만 최근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전기차 전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폭스바겐도 내년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4’를 내세워 미래차 행보에 속도를 높인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은 “하드웨어에 AI와 알고리즘을 결합하는 게 관건인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 애플과 구글 등 테크 기업들이 ‘올인’ 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잘 하고 있지만 자율주행 기술에서는 3년 정도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속도를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한신·박시진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