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기업회생절차와 자율구조조정지원프로그램(ARS)을 동시에 신청한 쌍용자동차가 최대 3개월 동안 기존 채권 채무 관계를 조정하고 HAAH오토모티브 측과 매각 협상을 할 시간을 벌게 됐다. 단기적으로 쌍용차(003620)는 국내외 채권자들과 채무 상환 유예 논의를 끝낸 후 HAAH오토모티브와 매각 협상까지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단계별 가능한 시나리오를 검토해봤다.
산은, 원칙론 앞세울 가능성
우선 쌍용차와 마힌드라는 국내외 채권자들과 채무 상환 연장 관련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기준으로 쌍용차는 산업은행 900억 원, 우리은행 대출금 150억 원, JP모건 등 외국계 은행 3사 대출 600억 원 등 총 1,650억 원의 원리금을 연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900억 원 채권 만기 연장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의 기간산업 안정 기금 지원 필요성까지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 실질적으로 보자면 ‘세금 투입’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정부와 산은이 마음을 돌릴지 여부에 달린 셈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세금 투입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쌍용차를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쌍용차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직후 평택 지역 정치권 인사를 중심으로 산은의 책임론과 공적 자금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현실화할 경우 쌍용차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 경우 쌍용차는 최대 3개월의 시간과 추가 자금을 벌게 된다. 쌍용차로서는 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HAAH오토모티브 측과 매각 협상을 벌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혈세 투입 논란이 부담이다. 이를 경계하는 듯 정부와 산은은 원칙론을 앞세우며 쌍용차 지원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동안 정부는 기안기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시적으로 경영이 악화한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한다며 쌍용차 지원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산은 역시 대주주 마힌드라가 외국계 은행의 채권 만기 연장을 해결해야 900억 원의 원리금 연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는 외국계 은행이 만기 연장을 안 해주는데 산은이 먼저 만기를 연장할 경우 외국계 은행이 산은 자금을 빼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산은이 쌍용차 지원에 미온적으로 나서는 데는 생존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것도 한몫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산은이 지난해부터 쌍용차 회생 방안을 고민했지만 자체 생존은 어려운 것으로 결론 냈다는 소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HAAH에 매각도 힘들어
산은과 정부의 지원이 없을 경우 ARS 프로그램 3개월 동안 쌍용차는 독자적으로 HAAH오토모티브와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 경우 쌍용차 매각 협상은 공회전할 가능성이 높다. HAAH오토모티브의 쌍용차 인수 전제 조건으로 산은의 채권 만기 연장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쌍용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난달 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HAAH오토모티브 측 인사가 쌍용차 평택 공장 실사 및 인수를 위한 협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며 “인수 조건으로 산은 등 금융권의 채권 만기 연장을 요구했는데 산은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HAAH오토모티브가 자금력을 충분히 갖춘 추가 투자자를 확보해 쌍용차 인수를 매듭짓는 방안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해법 없으면 결국 법원 손에 운명 놓여
앞선 두 가지 안이 모두 실패할 경우 법원은 쌍용차에 대해 회생 개시나 청산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하게 된다. 기업 운영을 계속했을 때의 가치가 청산했을 때보다 높을 경우 법원은 회생을 개시한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구조 개편 측면에서 쌍용차의 장기 생존 가능성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전후방 산업에 끼치는 영향, 1만 명에 달하는 직간접 고용 인원을 고려할 때 회생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회생을 개시할 경우 현재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만큼 인력 구조 조정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쌍용차 노조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는 2009년 첫 회생절차 때도 대규모 구조 조정 사태를 겪었다. 당시 쌍용차 노조는 77일간 공장을 점거하는 ‘옥쇄파업’으로 맞섰다.
/서종갑·박한신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