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과도한 규제와 세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과격한 처방을 20여차례 동원했음에도 부동산 문제가 풀리지 않은 것은 진단부터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23일 한국경제학회에 따르면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와 황세진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주택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라는 글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손 교수와 황 연구원은 현행 주택정책의 기조가 ‘박정희 패러다임’과 ‘전두환 패러다임’ 두 축으로 이뤄진 만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투기 억제를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 전두환 패러다임은 대단위 택지개발을 통한 주택의 대량 생산을 말한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수많은 투기억제 대책들이 시행되고도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투기 행위자를 지목하고 제재를 가해 가격상승을 막겠다는 접근법은 실패했다”며 “투기억제 대책들은 국민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필요할 수 있지만 가격 상승 속도를 몇 개월 늦추는 이상 효과를 가지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부동산 정책이 투기억제와 동일시되는 것을 보면 박정희 패러다임은 국민 의식에 뿌리내렸지만 부동산 가격안정과 같은 실효성 측면에서 실패했다”며 “공공부문의 대규모 택지개발을 바탕으로 주택을 대량 생산·공급하는 전두환 패러다임도 절대적 주택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를 대처하기에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투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너무 높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시장이 어떤 형태로든 왜곡됐거나 거품이 성장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만 정당하다. 하지만 예외적인 시기와 지역을 제외하면 가격거품의 징후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시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경제에 피해를 주는 ‘투기’가 무엇인지 정의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현 정부는 대표적인 투기세력으로 다주택자를 지목하고 있지만, 이들이 임대주택 시장에서 절대 다수의 물량을 공급하면서 나름대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택가격이 수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세금만으로 주택가격을 잡기 힘들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계층별 맞춤형 지원이라는 새롭지만 오래된 교과서적인 패러다임 정착을 위해서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지워나가면서 전두환 패러다임의 초점을 신도시 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전환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이번 정부에서 투기억제를 위해 도입한 수 많은 과도한 규제 및 세제를 정상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